[이웃사랑] 근이영양증 재현·재한군 돌보는 오복환씨

입력 2008-03-26 09:17:03

작은 키 재보고 싶지만 일어설 수 없었다

▲ 꽃다운 열여덟, 박재현군의 척추뼈는 조금씩 휘어 혼자 일어서기도, 땅을 보기도 힘들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 꽃다운 열여덟, 박재현군의 척추뼈는 조금씩 휘어 혼자 일어서기도, 땅을 보기도 힘들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도 주님의 은혜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말씀처럼 저희 가족들에게 믿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날이 갈수록 주님 뜻대로 되어감을 깨닫습니다. 8년 전 큰아들 재현이가 근이영양증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병에 걸린 걸 알았을 때도, 5년 전 작은아들 재한이가 같은 병에 걸린 걸 알았을 때도 늘 주님은 제 곁에 계셨습니다. 비록 두 아이들이 나을 수 없다는 병에 걸려 있지만 두 어린 양을 긍휼히 여기시어 좌절하지 않게 하심 또한 주님의 뜻임을 믿습니다. 주님, 재현이, 재한이가 속도는 더디지만 조금씩 자라고 있습니다. 철도 들어 능력없는 어미를 위할 줄도 압니다. 자신들의 모습에 낙심하지 않고 주어진 생에 감사하며 밝게 살고 있습니다. 모쪼록 주님의 뜻대로 두 아이들이 쓰일 수 있길 기도합니다. 밝은 아이들을 제게 주심을,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 있도록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복환(52·여·대구 달서구 월성동)씨의 두 아들 박재현(18), 재한(15)군은 근이영양증을 갖고 있었지만 "조금 불편할 뿐"이라고 했다. 의료진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 병은 몸속 근육이 조금씩 빠져나가 몸을 움직일 수 없으며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치병이다. 오씨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만 아이들의 병을 제때 알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을 앞세웠다.

"재현이가 4세 때였을 겁니다. 친정 어머니가 재현이 걸음이 좀 이상하다고 그러더군요. 해가 지나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어요. 계단을 오르내릴 때 난간을 잡고 천천히 가더군요. 초등학교 1학년 때 병원에 데려갔더니 병원에서도 이유를 모르겠다더군요. 성장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태권도도 시키고 계단 오르내리기 운동도 시켰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안한 마음뿐이죠. 근육이 점점 빠지는 병을 갖고 있는데 운동만 시켰으니 말이죠."

재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8년 전 "근이영양증으로 심장에 있는 근육도 점점 빠져나가 숨을 쉬기 곤란하다. 스무살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서 아무 것도 몰랐던 자신을 탓했던 오씨는 5년 전 재한이마저 같은 병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다만 재현이보다 진행속도가 느릴 뿐이었다.

"재한이까지 큰 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병원으로 가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간 재한이가 달리기나 줄넘기를 못한다는 말을 듣고 혹시나 했지만 오히려 달리기나 줄넘기를 많이 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또 그럴 일을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움직이는 걸 싫어할 때마다 게으르다고 핀잔을 주고 학교에 가기 싫어서 그런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너 걸음 옮기고 힘겨워하는 재한이에게도 미안한 마음뿐이죠."

오씨는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3년 전 아이들의 아버지와 이혼할 때도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하던 일이 잘 안 돼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전 남편은 자주 화를 냈으며 아이들 앞에서도 술을 마시고 폭언을 일삼았다고 했다. 자신 혼자 생계를 꾸려가고 있지만 할 만하다고 했다. 오씨는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새벽시간에도 세차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억척스레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다.

"재현이의 척추뼈가 앞쪽으로 휘는 바람에 장기를 압박하고 있다네요. 뼈를 바로잡아주면 숨쉬기가 나아진다고 합니다. 재한이도 불편하긴 하지만 더 불편한 재현이부터 바로잡아줘야 할 텐데…."

모정이 10평 남짓한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 두 아이는 서로 키가 크다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150cm가 채 되지 않는 두 아이는 서로 키를 재보자고 말했지만 스스로 일어설 수는 없었다. 아이들은 밝았고 엄마는 그래서 더 미안하다고 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