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김원우 지음
소설가 김원우는 시니컬하다.
목젖 끝에서 한숨 휘감고 나오는 탁한 목소리나, 번뜩 치뜨는 눈빛에 스포츠머리로 짧게 깎은 머리까지, 그는 외모부터 묘하게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의 소설도 그렇다. 신간 '모서리에서의 독법'의 한 대목을 보자.
'그 좀 시망스런 영감의 시선이 무안을 타느라고 헤번쩍거리더니, 이내 졸음기 많은 고양이의 눈매가 햇살을 받았을 때처럼 거두어졌다. 김씨의 험상궂었던 그때의 얼굴이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긴 해도, 묻는 말에나 불퉁하게 대꾸하던 그의 돈바른 성질 때문에 영감은 자신의 기억력을 정확하게 복제해낸 모양이었다. 영감이 곧장 홀가분한 낌새로, 그러나 해망쩍은 걸음걸이를 얼핏 비추며 복도로 사라졌다.'
'몹시 짓궂은'(시망스런) 영감이 '공연히 눈알을 굴리며 번쩍거리더니'(헤번쩍) '너그럽지 못하고 까다로운'(돈바른) 김씨의 성질 때문에 '총명하지 못하고 아둔한'(해망쩍은) 걸음걸이로 사라졌다는 얘기다.
이처럼 김원우(61·계명대 문창과 교수)의 소설을 읽는 것은 쉽지 않다. 한 땀 한 땀 고민과 자기성찰로 잉태되었을 단어를 내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어렵게 한다. 작품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정호응(홍익대 교수)씨는 "말랑말랑한 감성의 언어, 우직한 사실(寫實)의 언어가 지배적인 우리 소설에서는 대단히 낯선 것"이라고 말하며 그의 언어는 탐구적이고 비평적이며 자기성찰적 운용 방식을 보여준다고 했다.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은 2005년 '작은 천사'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달아나는 풍속도' '참다운 거짓인생' '당신이 미쳤대요' 등 세개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각각은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로 읽어도 될 만큼 완성된 세계를 보여준다. 1인칭과 3인칭 시점을 번갈아 쓰며 작은 경계를 만들어놓은 세 이야기는 한 '난민'의 삶을 서로 다른 기억으로 재조합해 흐릿한 초상으로 완성해 간다.
한 지방(대구)의 국립대학 의대교수로 수많은 제자를 걸러내며 뛰어난 외과의로 한평생을 보낸 삼팔따라지 한 의사가 있다. 미수(88세)를 넘기고 세상을 등진 박성득이라는 의사는 화려한 경력과는 달리 '근거의 자발적 소멸'이라 할 만큼 자신을 감추고 살아왔다. 추모문집을 준비하면서 대강이라도 은사의 생애를 복원하려던 제자 여(呂) 박사와 최 원장은 그의 철저한 '은폐'에 자못 망연한 심정이 된다.
유족을 포함한 몇몇 증언자의 부실한 증언과 삼팔따라지 부모를 둔 월남민 2세인 최 원장의 가족사에 대한 기억들이 덧대면서 막연하나마 박성득이란 인물의 생애가 있었음직한 실루엣으로 드러난다.
90년대 김원우는 저열한 생존 욕망이 충돌하는 부박(浮薄)한 한국 사회를 '난민하치장'으로 명명하고 한국인의 표류하는 난민적 삶을 냉소적으로 비판했다.
김바리(약고 꾀가 많은 사람)와 모도리(이해가 밝은 사람)가 능준한(남아서 넉넉하다) 세상 속에 나부죽(납작하게 찬찬히 엎드리는 모양)하고 나뱃뱃하게(작은 얼굴이 덕성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까.
김원우는 '본능적으로 아무거라도 짓씹고 보는 원시인의 세계와 같은 우리 사회, 그 속을 부유하며 엄숙한 가식의 탈바가지를 덮어쓰고 살아가는' 우리 삶을 깊은 성찰로 염려하고 걱정한다.
박성득이란 인물이 만난 것도 바로 이 하치장이었을 것이다. 간당거리는 나뭇가지에 앉아 은폐 엄폐하며 쉴 새 없이 살피다 훌쩍 흔적 없이 사라진 그의 삶은 어떻게 보면 최저선의 윤리를 지키며 살고 싶어한 인간의 마지막 새 울음이 아닐까.
그는 절벽 끝에서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암중모색을 평생 이어갔던 한 외과의사를 통해 텅 빈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윤리를 건져 올리며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을 역설하고 있다. 308쪽. 1만원. 도서출판 강 펴냄.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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