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관의 시와 함께] 불룩한, 봄/강미정

입력 2008-03-26 07:00:00

반으로 가른 봄배추 속에는 꽃대가 꽃망울을 송송송 단 채로 쪼개져 있다

눈물을 흘리며 썰던 대파도 꽃대 속에 꽃망울을 알알이 박아 놓았다

뱃속에 이렇게 많은 알이 슨 것을 보니, 죽어서도 눈감지 못하고 뚜룩뚜룩 쳐다보는 것을 보니, 몸 속, 무늬가 졌겠어, 아득하고 아득해져서 깊은 길이 났겠어, 생선 배를 가르며 하시던 어머니 말씀이 생각났다

봄에는 왜 이렇게 알 밴 것들이 많을까,

배란기 때마다 체온이 올랐겠지, 입덧으로 신 음식이 먹고 싶었을 거야, 낳을 때까지 먹고 싶던 홍옥 한 알처럼, 입이 달았을 거야, 생각했다

그래서 봄만 오면 바람이 단가, 살갗이 툭툭 갈라지며 저렇게 꽃이 피고 몸 속, 지울 수 없는 무늬가 지는가, 배가 불룩해지는가,

목이 메어왔다

산더미만한 배를 안고 다리가 퉁퉁 부은 임신중독증의 그 여자가 신발 밑창 자르는 일을 부업으로 한다면서 끓여 내오던, 그,

야, 배고프면 잠도 안 오잖아, 물기 고인 눈으로 웃던, 그, 봄,

어젯밤 꿈에 기미가 까맣게 오른, 팅팅 손등이 부어오른, 산더미처럼 부풀어오른 봄이 찾아왔었다. 쉼표처럼 툭툭 불거지는 꽃망울을 온몸에 매단 채. 어느 해 봄엔가는 댐 예정지 수몰지구를 찾았다가 정신이 나간 한 여자를 만났다. 사람들이 다 떠난 빈 마을을 홀로 지키고 있던 여자. 수태고지도 없이 산더미처럼 배가 부풀어 있었다.

"봄에는 왜 이렇게 알 밴 것들이 많을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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