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백성이 하늘입니다

입력 2008-03-25 09:24:16

한나라당이 시끄럽습니다. 그릇 깨지는 소리가 잘 날이 없네요. 공천기간 내내 친이니, 친박이니 하며 싸우고 친이, 친박도 모자라 이재오계, 강재섭계 등 소위 당내 실력자를 자처한 인사들까지 공천 잔칫상에 '숟가락'을 올리더군요. 깨끗한 사람, 전문가,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을 뽑겠다던 공천 초심은 간데없고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주먹만 오가지 않았지 허구한 날 싸움질만 하는 모습에 쓴웃음이 절로 났습니다.

한나라당 공천을 두고 적잖은 사람들이 '진흙탕 공천'이라고도 말하곤 합니다. 진흙탕에서 뽑은 후보들이라 그런지 몇몇 인사들은 한나라당이 총선 승리를 위해 공천 초기에 밝힌 '개혁공천'과는 거리가 멀어보였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여의도 정가에 혜성과 같이 등장해 한나라당 실력자들 주변에 바짝 붙어 '작업'을 한 뒤 개선장군인 양 공천장을 들고 수십년간 한 번도 찾지 않은 고향 지역구에 내려와 '고향 까마귀'를 외치는 모습에 또 한번 쓴웃음이 났습니다.

유권자들이 바라는 공천을 하지 않았다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으면 국민들에게 백배 사죄의 모습을 보여야 마땅한 이때에 한나라당은 이제 공천 잘잘못을 따지며 집안싸움을 벌이고 있네요. 공천에 원칙과 기준을 그렇게도 강조하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공천 기간 중에는 공천 잘해달라는 몇마디 말만 던져놓고는 공천이 끝난 한참 뒤에야 '속았다'며 강재섭 대표 책임론을 제기했습니다. '사후약방문'이 아닐까요.

박 전 대표의 공천 책임론 제기에 강 대표는 대구 서구 불출마를 선언, 정치권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하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습니다. 차기 대권을 꿈꾸고 있는 강 대표가 공천 책임을 혼자 지고 갈 수 없어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동반 책임을 제기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대권을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언론 분석도 이해가 됩니다. 한나라당 공천자들과 핵심 당직자 상당수는 이 부의장의 포항 출마를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개혁 공천 물꼬를 막은 장본인이라고 하더군요.

한나라당 공천이 이렇게까지 시끄럽고 국민들과 정치권의 지탄을 받은 적이 없었죠. 초심을 헌신짝처럼 버린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천에서 사욕을 버리고 유권자들의 입장에서 후보를 골랐으면 절대 '진흙탕 공천'이라는 말이 나올 수 없겠죠. 유권자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한나라당 공천이 이번 총선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점점 궁금해집니다. 25일 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4·9 총선이 사실상 시작됐습니다. 서울·수도권은 물론이고 대구경북 곳곳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들이 고전을 하고 있더군요. 공천 후유증이 드러나는 것이겠지요.

민주주의의 주인인 민초를 무시한 결과라고 여겨집니다. 조선의 왕도정치 한중심에는 백성이 있었습니다. 백성을 무서워하지 않은 임금은 결국 역사에서 버림받곤 했습니다. 한나라당도 국민을 진짜 무서워해야 합니다. 총선에 앞서 국민을 하늘같이 섬기길 바랍니다. 아울러 제발 '수신제가' 뒤 '치국평천하'를 했으면 합니다.

이종규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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