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밑그림에 채색하렵니다"
시인 배창환은 김천여고 국어교사고, 농부고 아버지고 남편이다. 고교시절 공납금이 없어 학교 매점에서 일했고, 영양실조에 허덕이며 좁은 방에서 형제들과 부대끼며 살았다. 땀흘려 일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가난했고 누이들은 어린 나이에 돈벌러 나갔다. 이런 구체적 삶이 배창환 시의 밑그림이다. 그래서 배창환의 시는 추상적이거나 모호하지 않다.
-서문시장 돼지고기 선술집- 중에서.
이 시는 가난한 농민의 자식으로, 도시 빈민으로, 노동자로 살아간 아버지의 자식 사랑에 대한 이야기며, 자식 역시 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는 시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단에 서면서 배창환의 삶과 시는 무장을 강화한다. 교육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고 평교사회 건설운동, 교육민주화 운동, 1989년 전교조 결성에 이르기까지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그런 그에게 해직은 예정된 길이었다. 이 시절 그는 이른바 '교육시'를 많이 썼다. 그는 '교육시인'이 되리라 다짐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다만 필요한 일을 했고, 필요한 시를 썼을 뿐이다.
'필요한 일과 필요한 시.'
배창환의 시가 아름답지 않고 슬픈 이유다.
-보충수업- 중에서.
10년의 해직기간을 보내고 복직한 후에도 전사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전사의 목소리는 시인의 고집이 아니다. 그는 거기, 그 땅에 서 있었고, 그래서 그 땅의 시를 썼을 뿐이다.
시인으로서 그는 현장의 시를 썼고, 국어교사로서 그는 학생들이 시를 제대로 읽기를 바랐다.
그가 엮은 책 '국어시간에 시 읽기 1'에는 130여편의 시가 있을 뿐, 해설이 없다. 이 책은 '어째서 학생들은 시와 거리가 먼가?'라는 물음에서 비롯됐다. 배창환의 눈에 교과서에 실린 시는 학생들 정서와 멀어 보였다. 게다가 대부분 시 읽기가 시험준비를 위한 것이니 학생들이 싫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시를 해설하는 대신 함께 감상하자고 말한다.
이 책은 우수도서로 선정됐고 여러 학교의 국어시간에 소중한 시 교육 자료로 쓰이고 있다. 시인 배창환이 교사로서 해낸 일들은 그런 것들이다. 그가 근무하는 학교마다 학생문학회를 만든 것도, 학생 작품집과 교지를 만들었던 것도, 체험학습활동을 펼친 것도, 시창작 교실을 열었던 것도 그것이 참교육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배창환이 보금자리를 대구에서 성주로 옮기고, 아이를 키우고, 작은 텃밭을 가꾸며 쓴 시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시인이 머무는 구체적 장소가 변했고 시에도 변화가 온 것이다.
'저녁산책' '가야산' '귀거래' '저문 날 가야산에 올라' 등은 이른바 민중문학의 범주를 벗어나 초월과 강호한정으로 흐르고 있다. 시골살이의 정서, 자식 키우는 아버지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그러나 복직 이후 1999년에 지은 시 '무 밭에서'는 서정적인 제목과 정서를 보이지만 여전히 아픔이 녹아있다.
-'무밭에서' 중에서.
배창환은 아이들의 미래를 단정하지 않는다. '조심스레 읽고' 있을 뿐이다. 오랜 경험을 가진 그는 아이들의 입성에서, 그들의 미래를 발견하지만 단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가 시인이기 전에 선생님이고, 선생님이기 전에 인간에 대해 애정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배창환은 오랫동안 대구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는 도시인이 되지 못했고, 늘 흙을 그리워했다. 시인은 1995년 귀향했고 대구와 성주를 오고가는 생활 중에 복직했다. 복직 후 2년 6개월 만에 근무학교를 대구에서 성주로 옮겼다. 삶의 뿌리를 농촌으로 옮긴 것이다.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고 그의 시 역시 변했다.
네 번째 시집 '흔들림에 대한 작은 생각'은 귀향과 복직을 전후해 쓴 시들을 묶었다.
시인은 농촌이나 중소도시 학교 아이들은 시를 쉽게 이해하고, 조금만 가르쳐 주면 쓸 줄 안다고 했다. 이는 흙이 키워준 능력이라고 했다. 그는 '시는 흙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가 2006년 발간한 다섯 번째 시집 '겨울 가야산'은 귀향 이후 흙과 아이들 곁으로 돌아온 이후 삶의 기록이다.
배창환은 자신의 시에 나타나는 구체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생활의 밑그림에 채색하기를 좋아합니다. 시인 자신의 삶과 시 자체까지 해체해버리는 자학적인 해체시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고통과 치열함이 없고 파편화되고 고립된 자아의 위악적인 자기파괴 몸짓만 암호형태로 난무할 뿐입니다."
배창환은 눈이 많이 내리던 날, 그 눈이 세상을 구분 없이 덮어버리던 날 '태어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눈은 세상 누구에게나 골고루 내렸고, 아름답고 추한 것을 구분 없이 하얗게 칠했다. 그럼에도 시인 배창환은 여전히 아픈 시를 쓸 것 같다. 눈은 공평하게 내리지만 그 눈을 맞이하는 사람의 자리와 입성은 다르니 말이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 시인 배창환은…
1955년 경북 성주 출생.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1981년 겨울 '세계의 문학'에 '한잔의 술을 마시며 우리는' 외 3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 1987년 10월 대구·경북 최초로 '경화여중교사협의회' 결성. 1989년 전교조 결성으로 해직. 해직 기간 중 '교육문예창작회' '전국국어교사모임' '대구국어교사모임' 창립활동. 1998년 9월 전교조 합법화로 복직. 현재 경북 김천여고 재직. 시집 '잠든 그대' '다시 사랑하는 제자에게' '백두산에 놀러가자' '흔들림에 대한 작은 생각' '겨울 가야산' 등 펴냄. 2000년 '국어시간에 시 읽기①'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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