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아리아와 오페라 내용은 '남남'

입력 2008-03-22 07:01:37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저도 오페라를 좋아해요"라고 말하는데, 실상 그들은 오페라를 듣는 것이 아니라, 아리아를 좋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리아만 듣는 것을 오페라를 감상한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아리아'라고 하는 노래는 우리들에게 '오페라' 자체보다도 더 친숙하게 많이 알려져 있는 셈이다. 사실 오페라 하면 많은 이들이 먼저 아리아를 떠올린다. 아리아란 '오페라 중 독창으로 부르는 노래'를 일컫는다. 예를 들어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라든지 '여자의 마음' 또는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등의 노래다. 요즘은 오페라 공연을 통하지 않더라도 영화나 텔레비전 등의 영향으로 아리아의 제목과 멜로디가 우리 귀에 많이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이런 아리아를 익히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아리아가 나오는 오페라를 아는 것과는 다르다. 사실 아리아의 내용은 오페라 전체의 내용과는 무관하거나 크게 다른 것도 많기 때문이다. 앞서 예로 든 유명한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의 경우 해당 오페라는 당연히 슬픈 비극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을 하곤 한다. 그러나 이 테너 아리아가 나오는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순진하고 착한 젊은 농부를 둘러싼 경쾌하고 즐거운 사랑의 이야기를 그린 희가극(오페라 부파)이다. 게다가 이 '남몰래 흐르는 눈물'은 슬퍼서 남들 몰래 눈물을 흘린다는 내용이 아니라 "그녀의 눈에 남몰래 눈물이 흐르는 것을 숨어서 보니 이제 그녀도 나를 사랑하고 있음에 틀림없다"라고 말하는 행복한 내용이다. 또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라는 소프라노 아리아는 제목으로만 판단한다면 아마도 효심이 극진한 처녀가 부친을 생각하면서 부르는, 마치 아버지의 생일날 축하곡쯤으로 적합한 노래인 양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TV 광고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이 아리아는 "사랑하는 아버지, 만일 계속 그이와의 결혼을 막으신다면 저는 강물에 뛰어들어 죽고 말 것이에요"라는 협박성 내용이다. 게다가 이 곡이 나오는 푸치니의 '잔니 스키키'라는 오페라는 인간 군상들의 탐욕을 적나라하게 그린 오페라인 것이다. 이렇듯 대부분의 아리아는 사실 오페라 줄거리와는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 좋다. 그러니 아리아의 내용은 전체 스토리 진행과는 무관한 것이니, 아리아를 안다고 해서 오페라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아리아는 오페라의 전부가 아니다. 한편 주인공이 아리아를 부르는 동안에는 오페라의 극적 진행은 잠시 멈추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리아는 연극에서의 '독백'과 다름없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무대 위의 출연자들은 독창자의 아리아를 듣지 못하고 오로지 관객들만 들을 수 있게끔 설정된 것도 많다. 앞서 말한 '남몰래 흐르는 눈물'뿐 아니라 베르디의 '리골레토'에 나오는 '여자의 마음'이나, 푸치니의 '투란도트'에 나오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 같은 것들이 그런 예라 할 수 있다. 무대 위에서 드라마가 한창 진행되다가 주인공이 감정을 분출시킬 수밖에 없는 절정의 시점에서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아리아가 터져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아리아는 아름답다. 하지만 아리아는 오페라 전체의 내용과는 무관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박종호 오페라 평론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