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생일 선물로 받은 주택가 장미꽃

입력 2008-03-22 07:06:11

지금도 오월 말이 되면 주택의 담장에 탐스럽게 핀 장미꽃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짓곤 한다.

나는 무뚝뚝하고 표현력 없는, 보수적인 남편을 중매로 만나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20여년을 살아오는 동안 사랑한다는 말이나 꽃다발 하나 받아보지 못했다. 나 역시 그런 말과 꽃다발을 받지 않아도 깊은 속마음을 알고 있기에 서운하다는 생각 없이, 열심히 살아가는 남편에게 맞추어 주면서 살아왔다.

어느 날 친구가 남편에게 장미꽃 100송이를 생일선물로 받았다는 말을 남편에게 전하며 '내 친구 누구는 장미꽃 100송이를 받았다던데, 한겨울에는 꽃값도 비쌀 텐데, 참 부럽다!'하면서 나도 모르게 아줌마의 어쩔 수 없는 근성인 꽃값을 생각하면서 남편에게 말을 했다. 내 말을 듣던 남편은 '아깝게 꽃은 무슨! 맛있는 거나 사 먹으면 되지. 곧 시들어버리는 꽃은 사면 뭐 하노! 나는 그런 거 못하는 사람인 것 잘 알제?'하면서 방을 나가 버렸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봄이 오고 중년의 나이가 된 나에게도 생일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매년 해 왔던 것처럼 함께 저녁 한끼를 먹고 아이들의 작은 선물로 생일을 보냈다. 하지만 남편은 저녁 먹기로 약속해 놓고는 거래처 일로 바빠서 아이들과 셋이서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화장대 위를 보니 물 컵에 다 펴서 꽃잎이 반쯤이나 떨어진 장미 서너송이가 꽂혀 있었다. 늦은 밤에 남편이 장미가 만발한 어느 주택 담 너머로 늘어진 장미꽃을 꺾어서 꽂아 놓고는 곤히 자고 있었다. 물컵에 꽂힌 장미와 남편 얼굴을 보니 가슴이 찡해졌다. 남남으로 만나 살면서 작은 이 행복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지금도 화창한 봄날 담장에 핀 장미넝쿨을 보면 그때를 생각하면서 행복에 젖는다.

이진겸(대구 남구 봉덕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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