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우리집의 꽃은 바로 나죠

입력 2008-03-22 07:07:44

창가에 비친 햇볕이 따스한 것이 봄 날씨이다.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고 예쁜 꽃들이 몸치장을 해대는 것을 보면 몇해 전 늦가을 내가 꽃이 되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의 친정은 사과로 유명한 산골마을이다. 내 고향은 언제나 내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담은 곳이기도 하고 얼굴만 떠올려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부모님이 계신 곳이기도 하다.

4남1녀인 우리 형제는 매년 늦가을 즈음이면 일요일 하루 날을 잡아 사과밭 싹쓸이 수확에 동참한다.

일요일 아침, 아버지 좋아하시는 참치 한 세트와 김 서너통 준비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집으로 향했다. 먼저 도착한 오빠, 동생네가 웃으며 반긴다. 각자 준비해온 음식들을 보따리보따리 풀어놓으면 어느 고급식당 부럽지가 않았다.

세월의 주름이 깊게 팬 부모님의 따스한 손 한번 잡아보니 가슴이 짠했다. 밀짚모자 찾아 쓰고 헐렁한 체육복에 흙 묻은 운동화 툭툭 털어 골라 신고 과수원으로 향했다.

각자 팀을 나눠 사과 따고 꼭지 자르고 박스 작업하고 일은 일사천리로 척척 진행됐다. "이래서 자식은 많아야 돼." "딸 하나는 적어. 둘은 돼야지." 늘 분위기 메이커를 하는 나에게 엄마는 늘 하나는 적다고 말씀하신다.

작업을 마치고 어둠이 내릴 무렵, 아버지는 사과 가득 싫은 경운기에 엄마까지 태우고 우리 오 남매를 앞세워 천천히 뒤따르신다.

"수고했다. 허리 안 아프나?" "개안타, 히야는…" 정감 담긴 말을 주고받으며 내려오는데 첫 눈이 내렸다. 나는 너무 좋아 길 옆 이름모를 풀꽃을 꺾어 귀에 걸고 팔짝팔짝 뛰면서 교통정리 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허허 웃으시며 아버지가 한마디 하셨다. "우리 집엔 쟈가 꽃이데이." 그 해 난 꽃이 되었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훈훈해진다.

아버지, 어머니 잘 계시죠? 건강하시고요. 꽃 같은 딸이 아버지, 어머니 많이많이 사랑합니다.

황미양(대구 북구 동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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