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업체 부장인 장문욱(45·가명)씨는 집이 3채나 된다. 남들에게는 시세 2억5천만원과 2억원 짜리 아파트, 1억3천만원 짜리 주택을 갖고 있는 알부자로 통한다. 장씨의 월평균 수입은 350만원이고, 가내수공업을 하는 아내도 월 150만원을 번다. 얼핏 부러울 게 없어보이는 장씨이지만 '빛좋은 개살구', 속앓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당장 아파트 담보대출만 2억원이고, 신용대출은 마이너스통장을 포함해 5천만원. 매월 이자 부담만 150만원이다. 새로 산 아파트는 양도세 부담과 부동산 경기침체로 처분이 안 되는 상황이다. 단독주택은 아내가 현재 가내수공업을 하는 곳이어서, 월 150만원의 수입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처분하기도 곤란한 지경이다.
'대한민국에서 중산층이 되려면 부동산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는 말은 30년 전부터 떠돌았다. 아파트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때, 뒤늦게 뛰어든 가련한(?) 중산층들은 투기의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는 형국이 됐다. 1가구 2주택 중과세를 면하기 위해 아파트를 내놓은 지 반년이 넘었지만 거래 열기는 식어버렸고, 그 사이 은행 이자는 월급의 5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늘어버렸다. 꿈에 부풀어 '상투 끝'을 부여잡은 중산층은 마냥 울고픈 심정이다.
월평균 소득기준으로 중산층 기준을 간신히 넘어서는 중소업체 대리 하상호(37·가명)씨. 시세 1억5천만원짜리 아파트가 한 채 있지만 담보대출이 5천만원이다.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나가는 '원리금균등방식'으로 앞으로 10년간 매월 57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이밖에 보험료 28만원, 아이 놀이방 및 학원비 50만원을 빼고나면 월급 중 남는 돈은 60만~70만원. 자가용은 세워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정도로 알뜰하게 살고 있지만 가정을 꾸려나가기가 벅차기만 하다. 조만간 태어날 둘째로 지출은 더 늘어날 형편이다.
대구 달서구 상인동 조근수(42·가명)씨는 헐값에라도 현재 집을 처분하고 싶지만 그간 손해를 생각하면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작년 봄 대출 1억원을 내서 새로 산 아파트는 인근 지역 재건축 입주 물량이 쏟아지면서 프리미엄도 없이 값이 제자리 걸음이고, 지금까지 낸 은행이자만 1천만원 넘는다. '집이 두 채'라는 환상도 잠시. 이래저래 손해를 따지면 연봉 절반이 날아간 셈이다.
'투기'가 아니라 '투자'를 한다며 부동산 대신 주식을 택했던 이들도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저축까지 포기해가며 말 그대로 쌈짓돈으로 주식·펀드 투자에 나섰지만 하락장세를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연봉 5천만원을 받는 중견업체 과장 강일중(38·가명)씨. 1남1녀를 둔 그는 자기 아파트가 있지만 담보 대출을 받았고, 현재 매월 100만원 가까운 대출이자를 갚고 있다. 저축은 전혀 없으며, 자녀 교육이나 은퇴 이후 계획도 막연한 상태다. 여유자금 3천만원은 직접 주식투자로 운용하고 있다. 대출이자 이상의 수익이 목표이며, 은행 이자가 적다는 이유로 저축은 꺼리고 있다.
위드자산관리 노경우 대표는 "강씨는 위험에 노출된 중산층의 전형적인 재테크 방법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며 "자산관리 상담을 하다보면 주식 직접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의 공통점이 전문가들의 조언을 거의 듣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중산층이 위험하다. '업그레이드'를 외치며 호기롭게 뛰어들었던 주식과 부동산 시장은 '배신의 계절'로 접어들었고, 안락한 노후를 가로막는 가시덩쿨을 말끔히 쳐낼 것으로 믿었던 국민연금은 녹슨 칼로 드러났다. 사보험과 개인연금, 가계대출로 빠져나가는 쌈짓돈은 늘어만 가고, 치솟는 사교육비와 물가의 중압감은 중산층 '자부심'을 철저하게 짓밟아 놓았다. 중형 아파트와 2천cc급 자가용을 갖고 있으며, 와인을 맛보고 스키와 바캉스를 즐긴다는 중산층. 푸념이 나올 법 하다. "도대체 중산층이 무엇이기에?"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이철우 "안보·입법·행정 모두 경험한 유일 후보…감동 서사로 기적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