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향한 수사자의 표효, 꽃잎보다 붉다
▨ 300(2007)
감독:잭 스나이더
출연:제라드 버틀러, 레나 헤디, 도미닉 웨스트
러닝타임:116분
줄거리:BC 480년. '크세르크세스' 왕이 이끄는 페르시아 100만 대군이 그리스를 침공한다. 그리스군의 연합이 지연되자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제라드 버틀러)'는 의회의 반대에도 300명의 스파르타 용사들을 이끌고 '테르모필레 협곡'으로 떠난다.
크세르크세스 왕은 레오니다스에게 항복을 권유하지만, 레오니다스는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일전을 치른다. 스파르타 전사들은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의 명예를 위해 불가능한 이 전투에 맹렬히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건다.
"우! 우!"
수컷들이 해야 할 가장 고귀한 일은 바로 제 집 지키는 일 아닐까. 100만 페르시아 대군의 간담을 써늘하게 한 300인의 전사가 그렇다. 방패와 창, 그리고 강철 같은 몸 하나로 그들은 고귀한 그 일을 수행한다.
흥미로운 것은 레오니다스의 결전에 화답하는 전사들의 외침이다. 단말마 같은 '우! 우!'는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죽음을 향한 무한 질주에 자유를 향한 열정, 그리고 추호의 흔들림도 없는 항쟁 의지 등이다. 그러나 더한 것은 야수성이고, 원시성이다. 그들의 말은 단말마 같은 수사자의 포효와 다름없다.
스파르타는 영웅 헤라클레스의 후손이라고 믿고 있다. 헤라클레스는 사자로 대변된다. 그의 12가지 과업의 첫번째가 네메아의 사자를 퇴치하는 일이었다. 이후 그는 키가 크고 힘센 근육질 남성으로 사자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거대한 몽둥이를 가지고 다닌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300인의 전사는 또 다른 헤라클레스다. 그들의 왕 레오니다스의 이름은 '사자의 아들(Lion's Son)'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쫄팬티 외에는 완전히 노출된 근육질 강철 전사들의 "우! 우!"는 그들이 수사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역동적인 함성이다.
'300'은 그래픽 노블의 전설 프랭크 밀러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씬 시티'에서 보듯 그의 만화 작품은 하드 보일드한 잔혹성을 전반에 깔고 있다. '300'도 피가 튀고, 뼈가 잘리고, 몸이 창에 꿰이는 잔혹한 이미지로 가득하다.
'300'을 본 후 설치작업을 주로 하는 화가 손파는 피처럼 붉은 색을 바탕에 깔았다. 전사들의 불타는 정열과 남자로서의 강인함을 나타낸 것이다. 영화에서 붉은색은 가장 도드라진다. 빛깔도 선홍이 아닌 농도 짙은 피의 색깔이다. 오랜 세월 독 속에 묻어둔 진눅한 고인 감정과 같다.
'뜨거운 문'이라는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벌어진 '300'의 전투는 동서양의 역사를 바꿔놓았고, 동서양의 개념이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게 된 시초가 되었다.
동양에 대한 혐오라는 서양의 시선을 '300'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간교하며, 사악한 페르시아의 이미지다. 이런 시선을 의식한 듯 프랭크 밀러는 "'300'은 동양에 대한 두려움을 그래픽 노블이란 대중적인 장르를 통해 확장시킨 것"이라며 "스파르타인들의 공포가 얼마나 대단했을까"라고 반문하고 있다. 진눅한 붉은 색은 그러한 고이고 고인 두려움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이다.
손파의 작품은 한 화면을 단일 소재인 고무로 제작했다. 단일 소재는 스파르타를 지키기 위한 전사들의 하나 같은 마음을 상징하고, 고무는 유연하면서 부러지지 않는 그들의 정신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것은 왕의 이미지다. 전투의상만 상징적으로 표현했고, 몸은 피 속에 녹여 넣었다.
'300'이 개봉하고 화제를 모은 것이 전사들의 복장이고, 왕자(字)가 깊게 새겨진 복근이다.
검은 팬티만 걸친 채 근육질의 전사들이 화면 가득히 남성적인 힘을 발휘하는 장면은 매혹적이지 않을 수 없다. 뭇 여성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통상 스파르타 군사들은 치마를 입고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미술 작품에서 그렇게 표현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랭크 밀러는 헤라클레스의 동상에 주목했다. 그는 치마를 입지 않았고, 온몸을 노출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헤라클레스의 후손이 헤라클레스 패션을 따랐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우광훈은 '가시왕'이라는 시를 통해 레오니다스를 그렸다. 역시 '살과 피' '꽃잎보다 더 붉은'이란 시어를 통해 '300'에서 적색의 이미지를 건져 올리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암컷의 하얀 속살'에서 자유의 소중함을 느낀 것이다. 영화에서 레오니다스왕은 출병하기 전 고르고 여왕(레나 헤디)과 짙은 사랑을 나눈다. 다양한 각도로 잡은 섹스신은 상당히 관능적이다. 기원전에 이런 체위가 있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 달빛에 비친 둘의 섹스는 더 없이 간절해보인다.
이런 간절함은 '제 집 지키는' 수컷의 본능을 잘 보여준다. 고상하게 얘기하면 '자유의 의지'지만 그 또한 레오니다스에게 여왕과의 애틋한 섹스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고르고 여왕은 남편이 출병하고, 정적(政敵)인 테론 의원(도미닉 웨스트)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그와 잠자리를 한다. 요즘으로 보면 윤리에 반하는 행위지만, 역사적으로 충분히 수긍 가는 대목이다.
스파르타에서 남자는 태어나면서 전사로 길러지지만, 여자는 더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또 다른 전사로 길러진다. 바로 섹스이다.
그렇게 볼 때 고르고 여왕의 일탈은 일탈이 아니라 제 집 지키기 위한 암사자의 열정이고, 그 열정 또한 레오니다스 못지않게 붉다. 그래서 영화 '300'은 '바다의 심장을 꿰뚫고' 나온 붉은 피의 향연인 셈이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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