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상급 음악인 연주회 잇따르는 곳
프랑스 파리의 이름 있는 카페들은 많은 보헤미안(Bohemian: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시인이나 예술가)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곳이다. 대구와 그리 멀지 않는 경남 거창에 국내에서 내노라하는 보헤미안들이 주로 찾아 연주회와 작품 전시회를 열고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카페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간 것은 지난 14일 오후 늦은 시간이다. 이곳 연주회에 가본 적이 있다던 꼬마 바이올리니스트 오천윤(8)양의 어머니(장경씨)가 기꺼이 안내를 해줘 대구를 출발, 88고속도로를 탄 지 1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올 때 주인에게 쉽게 올 수 있는 방법을 물었더니 경남은행 맞은편 100m지점이다. 아림초등학교와 충혼탑을 끼고 있었다.
거창읍 상림리 792의 2 '콘서트 하우스 IN'(전화 055-944-6244)는 언뜻 보면 갤러리 같다. 하지만 입구에 세워진 이젤 위의 메뉴판은 분명 음식점임을 말해주고 있다. 일본서 만든 마지막 제품인 그랜드 피아노(야마하235)를 앞에 두고 앉자마자 커피를 한잔 주문한 뒤 주인 김혜선(51)씨를 만날 수 있었다. 에스프레소 커피의 진한 향이 입안에 퍼질 즈음 '콘서트 하우스 IN'이 대단한 집이란 사실을 알았다. 2006년 4월 문을 연 이래 박창수 프리 뮤직 콘서트를 시작으로 임미정 피아노 독주, 영화감독 이명세, 명창 박춘명, 성악그룹 한국Lied포럼, 플라맹고 트리오& 프리뮤직 듀오, 이승진 교수 첼로 연주, 소프라노 이윤주, 피아노 이윤정, 첼로 박경주 듀오 콘서트, 바이올린 이경선 독주 등으로 정기 연주회를 이어온 곳이었다. 국내 음악계의 최고봉들이 줄줄이 다녀간, 그야말로 '닫힌 시골'에 존재하는 '열린 공간'이 아니던가.
시골 동네 한구석에 위치한 카페에 기라성 같은 음악가들이 찾아들고 있는 데 대해 주인은 "연주자가 연주해 주고 가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로부터 화답을 받고 가는 곳"이라고 말했다. "정기 연주회 때면 3~4세 어린이들이 한 두 시간 동안 숨죽이며 경청하는 것에서 연주자의 순간적 치열함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됨을 느낄 수 있죠. 때론 음악 문외한도 쇼크를 받고 간답니다." '선생님'으로 불리는 주인 김(피아니스트)씨는 "연주자의 숨소리를 듣고, 땀을 보며 관객들이 한몸이 되고 처음 본 사람들끼리 서로 공감하며 눈빛을 교환하는 등 음악에 심취한 모습을 보노라면 고맙고 행복할 따름"이라며 희색을 지었다.
김씨는 "서울에 살다가 자연 속에서 애를 키우고 싶어 서울과 완전히 단절된 이곳으로 이사 왔으며, 딸이 이곳의 고교를 졸업하고도 연세대에 거뜬히 입학, 4학년(바이올린 전공)인 지금 대학 오케스트라 악장을 맡고 있다"고 자랑했다. 얘기 도중에 '황색 새의 발톱', '노란 원숭이'등을 쓴 소설가이자 김씨의 남편인 이명행(50)씨가 문학과지성사 채호기 대표와 함께 들어와 인사를 나눴지만 방해가 될까 싶어 자리를 피해줬다. 이곳에서는 4월부터 첫째 또는 셋째 토요일 오후 7시 정기 음악회를 열 계획이다. 종전에 월'목 등 불규칙하게 연주회를 하다 보니 일반 손님들이 식사를 하는 데 방해가 돼 일정을 고정했다는 것. 하지만 수시 연주회는 자주 열린다. 5월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조영미(연세대 교수) 독주회가 열릴 예정이다. 연주회는 뷔페 식사비 2만원만 내면 누구나 참관할 수 있다. 홀 면적이 50평이지만 연주회 때는 최대 70명까지 들일 수 있다. "시골서 50~60명 모으기란 참으로 어렵죠. 연주자들의 차비조차 못 맞춰 줄 때도 많아요. 그때마다 그분들이 신경 쓰지 말라며 약간의 차비조차 안 받으려 해 더욱 미안함을 느끼죠. 연주자들이 거리가 멀어 당일 왕래가 힘들지만 2층 방에서 자고 연주를 준비하는 등 되레 배려를 해주니 행복할 수밖에요." 정기 연주회 음악인 초청 섭외는 김씨가 도맡아 한다. 지인이나 앞서 연주한 사람들의 소개로 알게 된 사람들을 선정, 이메일이나 전화로 일정을 잡는다. 관람객들을 위해 악기와 나이를 감안, 연주자를 선정하는 일도 그리 쉽지만은 않다고.
심포니'차이코프스키 등 클래식 음악을 주로 틀어주는 이곳은 그림 전시공간으로 무료 제공된다. 그림이 팔리면 온라인 송금도 해준다. 지금은 '한들회'그림전(10여점)을 열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전시회가 열리는 데 1년간 쉴 틈이 없다.
예술인들로부터 사랑받는 곳이어서 그런지 여럿이서 웅성거리며 즐기는 시끌한 분위기는 도무지 찾아 볼 수 없다. 10여개 테이블 중간 중간에 놓인 간이칸막이는 주인조차 못마땅한 장애물이지만 농촌 군소재지 특성상 서로 얼굴을 아는 손님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설치했단다. 작은 연못에다 잔디 정원을 낀 테라스(테이블 4개)는 다음 달 부터 제 기능을 할 듯 싶다.
이곳 음식도 수준급이다. 농촌에서 원두를 바로 갈아서 뽑는 에스프레소는 흰색에 은색 테두리를 한 커피 잔과 함께 여독을 풀어주기에 제격이다. 이밖에 안심스테이크(2만8천원)를 비롯해 볶음밥, 스파게티 등 식사류와 와인 등 다양한 음료는 도시의 유명 레스토랑 못지않은 맛을 자랑한다.
이곳은 음악과 문학, 미술이 살아 숨 쉬는 곳이란 표현이 맞겠다 싶다. 정기 연주회가 있는 날이면 유명 연주자와 함께 호흡을 하며, 나 또는 우리만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이다.
황재성기자 jsgold@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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