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앞둔 총선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정당은 정당대로, 출마후보자는 후보자대로 서로들 국민의 마음을 얻겠다고 '쇼'를 하고 있다. 총선판의 1라운드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벌인 정당들의 공천에서였다. 한나라당의 텃밭이라는 지역에서는 다선 의원들이 대거 낙마했다. 그 때문에 정치에 처음 입문하는 새 인물들이 상당수 당의 공천장을 거머쥐었다.
유권자들은 일단은 다선의 소위 정치 거물들이 당 공천에서 탈락하는 이변들을 즐겁게 구경했다. 대물들의 탈락은 유권자에겐 그 자체가 하나의 카타르시스였다. 필자의 경험칙상 유권자들의 극히 일부만이 지역 국회의원들과 특별히 친소관계에 있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 유권자들로서는 인물이 바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극이 되기에 충분했다. 후보자로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유권자에게는 현실이다.
공천에서 탈락한 인사들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親李(친이)계로 분류되는 일부는 '분하지만 승복한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더 많은 탈락자들은 말을 바꿔 타거나 親朴(친박)연대라는 이름으로 출마해 국민들의 마음을 얻겠다고 선언한다. 줄을 잘못 선 죄, 실세를 몰랐던 죄, 그 바닥에선 약도 없다는 사실을 몰랐더란 말인가.
공천을 받은 후보도 마냥 느긋할 수만은 없을듯하다. 그 자신 세상을 바꿀 능력이 있더라도 막상 여의도에 입성하고 나면 결국은 '일개 초선'에 지나지 못한다는 것을 유권자들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임자의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배우일 뿐이다. 조직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카드 중 하나인.
이것은 지역에 특별한 연고도 없으면서 오랫동안 공을 들인 상대를 물리치고 공천을 꿰찬 후보일수록 더욱 분명하다. 따라서 耐久年限(내구연한)이 지나면 언제든지 처분되는 소모품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한다.
당이 탈락시킨 인사건 새로 공천된 후보건 모두가 지역과 당을 위한 선택이라지만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어느 쪽도 지역민의 뜻을 존중해서 고민한 흔적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로 결정되든 유권자들이 선택해 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그런 결정을 가능하게 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러고도 국민들 마음을 얻겠단다. 유권자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였기 때문일까.
사실 유권자들이 출마한 후보들의 정책이나 인간적 면면보다는 바람이나 분위기에 편승해 투표한 과거가 없진 않다. 출마하려는 모두가 그런 민심을 기대하는 듯하다. 공천에서 탈락시킨 측이나 탈당해서 출마하려는 쪽 서로가 민의를 배신했다고 공박하는 것이 그 방증이다.
시민으로 고향에 돌아온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연일 국민들로부터 박수와 환호를 받고 있다. 환영 나온 주민들 앞에서 그는 "야 기분 좋다"고 고함질렀다. 보기에도 홀가분하고 편안하다. 그는 인터넷으로 국민들과 소통하며 평범한 국민으로서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도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좌에서 내려온 그의 귀향을 환영해 마지않는 것이리라.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대통령의 자리에 있었고 재임기간 내내 국민들과 불화한 사람이다. 한때 그렇게 미워했던 대통령도 시민의 자리로 내려앉아서야 지역민들과 함께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이다.
그러니 새로 국민들의 마음을 얻으려는 자들은 모름지기 명심해야 한다. 국민들에게 늘 그의 존재가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더 큰 스트레스 덩어리가 된다. 그러다가 떨어지면서 국민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이다. 더러는 국민 곁으로 떨어져서 살아남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떨어져서 무대 뒤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 각오도 않고 감히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 시작했다면, 가당찮다.
이제 본선이 시작됐다. 너도 나도 국민들의 마음을 담보로 서바이벌게임에 도전한 것이다. 공은 유권자에게 넘어왔다. 본때를 보여줘서 복수해야 할 판이다.
李 敬 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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