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농어촌] (중)그늘진 시설하우스 농가

입력 2008-03-20 09:19:31

▲ 고령의 친환경 토마토 작목반 농민들.
▲ 고령의 친환경 토마토 작목반 농민들. "오른 기름값 때문에 토마토 하우스의 난방을 줄였더니 수확량이 지난해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며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고령·정창구기자

"이대로 계속 농사를 지어야 할지 포기해야 할지 막막할 뿐입니다."

고령군 덕곡면에서 시설하우스 농사를 하고 있는 덕곡 친환경 토마토작목반 농가에서는 요즘 토마토 수확이 한창인데도 시름이 가득하다.

하우스 난방 기름값을 비롯해 비닐·박스 등 농자재 어느 하나 오르지 않은 것이 없지만 토마토 시세는 오히려 지난해보다 큰 폭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작목반장 김병열씨는 "시설원예 경영비 가운데 난방비가 40% 정도 차지하고 있는데 면세유가 지난해 670원에서 820원으로 20% 이상 올랐고, 비닐·포장박스 등 농자재 값도 모두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올겨울에는 기름값을 감당하지 못해 토마토가 얼어죽지 않을 만큼만 보일러를 가동했더니 생육이 떨어지고 병이 심해 수확량이 지난해의 절반 이하로 떨어진데다 가격도 10% 이상 하락해 삼중고를 겪고 있다"며 한숨을 지었다.

한 농민은 "정부가 농촌의 경쟁력을 높인다며 친환경 농사를 적극 권장, 우후죽순 친환경 농업이 늘어나는 바람에 경쟁력을 상실한데다 지원책도 미미해 농민들만 죽게 됐다"며 "군수나 의원들이 말로만 생색낼 것이 아니라 농촌현실을 직접 살펴보고 시급히 지원책을 세워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산 남산면 전지리에서 시설포도 8천850㎡를 재배하는 석진태(59)씨는 "기름값은 물론 비닐 포장재와 출하용 종이 상자 값이 너무 올라 올해는 포도농사 지어도 남을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현재 시설포도 가온을 위해 필요한 것은 중유. 현재 ℓ당 가격은 830원으로, 지난해 가장 쌀 때 가격인 420원보다 410원이나 올랐다. 월 2만ℓ의 중유를 사용해 가온을 하는 전씨의 경우 한 달 평균 820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이곳 시설포도 농민들 대부분이 작년보다 1개월 정도 늦춰 가온을 한 탓으로 시설포도 절정기가 예년의 6월경에서 7월로 1개월 정도 늦어짐에 따라 홍수출하로 가격이 떨어지고 농가소득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고 있다.

석씨는 "기름값이 많이 올랐으면 면세유라도 많이 공급되면 좋겠는데, 면세유량이 지난해에 비해 25% 정도 줄어들었다"고 했다. 또 "기름값과 비닐 포장재, 출하용 종이 상자 값이 다 올라 지난해보다 약 3천여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며 "그렇다고 농사를 안 지을 수도 없는 일 아니냐"고 했다.

그는 지난해 비닐하우스 한 동에 지방비 50% 보조와 자부담 50%로 에너지절감사업(보온이불설치사업)을 실시한 결과, 기름값 30% 절감 효과가 있었다면서 이 같은 사업을 확대해 줄 것을 건의했다.

경북 오이 생산량 1위를 차지하는 상주지역 원예조합 김영국(52·상주 사벌) 대표는 "18년 동안 오이농사를 짓고 있지만 올해처럼 어려운 적은 없었다"고 했다. 난방비는 배가 넘게 들어갔는데도 수확량과 가격은 20~30% 떨어졌기 때문이다.

상주지역에는 300여농가가 120여만㎡에서 2만여t의 오이를 생산하고 있다. 오이농가들은 그러나 난방비를 줄이기 위해 보일러 가동을 감소시키면 곧바로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시설농 김민석(44·상주 낙동)씨는 유가 고공행진이 이어지자 난방시설을 경유에서 축열식 전기보일러로 교체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세농가들에겐 이 또한 그림의 떡이다. 전기보일러는 기름보일러에 비해 50% 이상의 난방비 절감 효과가 있지만, 교체비용이 수천만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상주원예조합 방형문 과장은 "지난 겨울부터 경유전용 보일러를 벙커A 중유 겸용 시설로 교체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면서도 "고유가 시대 난방비 감소를 위한 근본 대책이 없을 경우 빚을 지면서도 어쩔 수 없이 농사를 짓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정창구·김진만·엄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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