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부동산 열풍] '대운하 터미널' 후보지의 진실

입력 2008-03-08 07:40:57

공식발표 한줄 없는데 '카더라'가 '맞더라'로

한반도 대운하 추진 소식 때문에 낙동강 주변지역 일대 부동산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경북 상주시 낙동면과 의성군 단밀면 중 강변 지역에는 외지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면서 주민들의 기대심리를 부추기고 있고, 덩달아 주민들은 '조만간 대박이 터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뜨겁게 달아오른 일부 지역과 달리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고령군 다산면 일대와 낙동강 건너 달성군 논공읍 일대는 그다지 부동산 바람을 실감할 수 없는 상황. 오히려 대선 이후 부동산 매물은 뚝 끊겼고, 땅값도 소폭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문경지역도 외지인들의 문의 전화만 부동산 중개업소를 바쁘게 할 뿐 토지 수용 소문이 나돌면서 실제 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터미널 후보지 계획, 아직은 실체가 없다

취재 과정에서 궁금증이 생겼다. 과연 구체적인 터미널 후보지는 언제 어떻게 결정된 것일까. 실체가 있는 것일까. 물론 '후보지'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터미널 입지로 거론되면서 개발 호재로 받아들이는 지역민들은 '후보지가 곧 적합지'라며 마치 터미널 입지가 결정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발표 시기와 규모 결정만 남았을 뿐 화물 및 여객 터미널, 간이 터미널 위치는 확정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대구시와 경북도도 이런 움직임에 한몫하고 있다. 대구시는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대구 내륙항 및 물류 터미널 건설(달성군 논공읍 일원 990만㎡ 정도)'이라고 명시했고, 경북도 역시 3차례에 걸친 보도자료를 통해 '공용(화물, 여객) 터미널이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고령군 다산면 지역 600만㎡ 부지', '구미권의 물류 수송 거점항이 될 구미터미널', '상주 화물터미널이 예정된 함창읍 일대'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 청와대, 정부 등 어느 한곳이라도 이들 후보지 또는 예정지를 구체적으로 발표한 적이 있을까? 확인 결과 그런 사실은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후보 시절 발표한 공약집에서 '다목적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담기는 했지만 필요성과 효과, 재원조달 방안 등을 개략적으로 언급했을 뿐이다.

국가경쟁력강화특위에서 한반도대운하TF 팀장을 맡았던 한반도대운하연구회 장석효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한나라당도 대운하와 관련해 구체적인 터미널 입지를 언급한 적은 전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터미널 위치는 전혀 확정된 것이 아니며, 실제 입지가 선정되기까지 행정적 절차부터 거쳐야 할 과정이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후보지 계획은 월간지가 정했다?

공식 발표는 단 한번도 없었던 터미널 후보지와 예정지가 어떤 경로를 거쳐 '○○면 ○○리'까지 명시해 지자체 발표 자료로 나오게 됐고, 심지어 언론조차도 이를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게 됐을까? 대운하를 담당하는 지자체 한 공무원은 이 물음에 대해 답 대신 책 한권을 내보였다.

'한반도 대운하는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물길이다'(한반도대운하연구회 지음. 2007년 11월), 하지만 이 책에도 구체적인 지명은 없다. 화물터미널 12곳과 여객터미널 47곳의 개략적 위치, 즉 '상주시 일원, '구미시 일원' 등지로 표시돼 있을 뿐이다. 가령 여객터미널 위치 중 하나인 '낙동터미널'(상주시 일원)의 경우 현황 및 여건에 '교통여건이 양호하여 문경시, 예천군 및 안동시와 연계 가능. 부지 확보가 용이하고 인근 취락, 관광지와 연계 가능'으로 표기돼 있을 뿐이다. 이 책에서 낙동터미널을 언급한 내용은 이것이 전부다.

구체적인 '동, 리'가 어떻게 확보됐는지를 묻자, 담당 공무원은 "모 월간지에 실린 기사 내용을 참고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해당 월간지 기사의 작성자는 "자료를 처분해서 알 길이 없고 다만 한반도대운하연구회에서 자료를 받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지난해 다른 월간지는 한반도대운하연구회를 통해 입수했다며 터미널 입지 47곳의 구체적 위치를 공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책이나 월간지를 통해 '제안'한 화물 및 여객 터미널 위치는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책에는 '기능적인 면과 입지조건을 고려하여 계획한 터미널'로 표기돼 있다.

◆후보지가 정해지기까지는

터미널 입지 부분을 저술한 저자 중 한명인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구자윤 교수는 "입지가 정해진 것은 한곳도 없으며, 말 그대로 연구회 입장에서 접근성, 확장성, 인접도시 연계성, 개발 촉진성 등을 고려해 '이쯤에 들어설 필요가 있겠다'는 의미에서 제시한 위치일 뿐"이라고 말했다. 구 교수는 또 "책을 통해 제시된 위치는 장기간의 연구와 정량적인 분석을 통해 결정된 것이 아니며 마치 후보지 또는 예정지로 언급되는 것조차 부담스럽다"며 "구체적인 후보지(예정지)는 정부와 각 지자체가 향후 연구용역을 통해 결정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월간지 기사 역시 터미널 위치 선정에 대한 원칙만 제시하고 있을 뿐 정량적인 분석이 어떻게 이뤄졌고, 구체적으로 얼마 동안의 조사를 거쳐 입지를 선정하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한반도대운하연구회에서 터미널 입지 선정의 원칙을 만드는 역할을 했다는 홍익대 도시공학과 황기연 교수는 "접근성과 집적성, 공간확보라는 원칙을 갖고 부지를 검토했지만 터미널 후보지로 결정된 것은 전혀 아니다"며 "실제 대운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각 지자체의 여건이나 주변 도로 및 산업현황 등을 종합적이고 정량적으로 검토해서 최종 확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발표된 입지가 엉터리라는 뜻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이고 확정된 위치는 더더욱 아니다"고 강조했다. 대구 인근 터미널 입지를 직접 정했다는 황 교수는 최근 대구시가 대구터미널 위치 재조정 및 규모 확대를 건의했다는 소식에 대해 "아직 결정된 것도 아니고 그런 건의를 받아들여서 실행에 옮길 정부 기관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그런 의견을 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오히려 반문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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