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육상 유치·경제자유구역 지정…곳곳에서 변화의 기운, 기회는 왔다\
10년 넘게 천덕꾸러기 신세이던 대구(大邱)씨. 남들은 평생토록 한번 오기도 힘들다는 대참사를 두차례나 겪었고, 외환위기 이후 돈깨나 벌어오던 식솔들은 줄줄이 나자빠졌다. 한때 서울에 가면 제법 행세하는 세도가였지만 그마저 끈떨어진 지 오래. 대경(大慶) 가문의 종가를 자처하며 수많은 가솔들이 기댈 언덕(丘) 노릇도 했건만 행색이 예전 같지 않다. "한때 잘나가더니만"하며 비웃는 이웃들에게 "도대체 언제 잘나갔느냐"며 대판 따지고 싶지만 구설에 오를까 겁부터 난다. 해는 바뀌었고, 15년 만에 대경 가문에서 대통령도 배출했다. 집 앞으로 배가 다니는 물길이 뚫린다는 소식도 들리고, 잘만 하면 마을 뒤터에 외국 가는 비행기가 뜨고 내릴 신공항이 들어설지도 모른다. 4년 뒤에는 잘 뛰고 잘 넘는 전세계 선수들을 불러모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도 열어야 한다. 하지만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변화무쌍한 시대. 앞날 운세가 너무도 궁금했던 대구씨는 요즘 잘 나간다는 '무릎팍 도사'를 찾았다.
'천기누설 무릎파~악!'을 외친 도사는 뜬금없는 방문에 놀란 눈치다. "대통령을 네 분이나 배출한 대한민국 3대 도시(아니 이제 4대 도시인가) 대구씨께서 어인 일로 무릎팍 도사를 찾아오셨는지?" 상기된 표정의 대구씨, 그간 사정을 이야기하며 한숨을 내쉰다. "배트맨이 산다는 범죄와 타락의 도시 '고담'을 앞에 붙여 고담 대구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식솔들마저 하나 둘씩 떠나면서 인천보다 작아졌습니다. 건설과 섬유는 힘들기만 하고 가문을 새로 일으킬 기계, IT는 아직 제몫을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놀란 눈치의 무릎팍 도사,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운을 뗀다. "김지하 시인은 대구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철학과 교육, 전통사상이 숨쉰다고. 나쁜 의미의 '고담'은 이제 잊어버리십시오. 고담은 철학과 사상을 논하는 '고준담론'의 약자가 아닐까요?"
아직은 멍한 표정의 대구씨를 본 무릎팍 도사. "오신다는 말을 듣고 사전 조사를 좀 했습니다. 이문열 작가는 지난달 미국으로 가기 앞서 대구씨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이면서 '미래는 밝다'고 했습니다. 김지하 시인은 '르네상스가 도래할 것이고, 대구가 아니면 안될 것 같은 무언가가 느껴진다'고도 했습니다. 홍철 대구경북연구원장은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와 지식경제자유구역 지정은 어느 누구의 도움도 아닌 대구씨 스스로 해낸 일이며, 가문을 되살릴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했고요. 기운이 좀 나십니까?"
한결 밝아진 대구씨, 머뭇거리다 한마디 꺼낸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고을에서 다시 대통령이 났습니다. 어떻게, 좋은 일이 좀 생길까요?" 굳어진 표정의 무릎팍 도사는 사뭇 진지하게 답을 한다. "우동기 영남대 총장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른바 TK 정권 시절 대구씨가 무슨 이득을 봤느냐, 이명박 대통령을 이제 영남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대구씨 스스로 선언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인중 대구상공회의소 회장은 오히려 수도권과의 무한 경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화언 대구은행장은 과거 정권을 잡고 있던 시절, 오히려 대구씨는 미래 준비없이 쇠락의 길을 걷기만 했다고 지적했죠. 물론 대구씨가 그간 서울에 와서 받은 설움과 박대는 많이 없어질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와대에 전화 한통으로 해결되던 시대는 끝난 것 아닙니까?"
아직도 명쾌하지 않다는 듯 입맛만 다시는 대구씨. 무릎팍 도사는 일갈을 날린다. "지금껏 대구의 발전은 대구씨 스스로 해낸 자랑스런 결과물입니다. 오히려 실리도 없이 청와대만 바라보는 세월 동안 대구씨의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사고가 많이 무뎌졌습니다. 하지만 변화의 기운이 보입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 '하늘길, 물길, 국가공단'이라는 구체적인 발전 방안까지 제시하지 않았습니까, 김범일 대구시장도 소외와 차별이 없는 시대, 대구의 기회가 왔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결과를 이뤄내는 것은 대구씨 자신입니다. 시민 한 명 한 명이 똘똘 뭉쳐 '대구의 가치'를 재발견한다면 미래는 무한히 밝을 것입니다. 영원히 발전하라. 대구여~."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 '대구 주가' 어떻게 나왔나?
매일신문은 대구경북연구원과 함께 가칭 '주식회사 대구시'를 가정해, 해방 이후 60여년간의 주가 변동 그래프를 작성했다. 1945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20건 이상의 국내외 주요 사건들을 분석, (주)대구시에 미친 영향을 파악했으며, 각 사건을 ▷정치적 효과 평가 ▷경제적 효과 평가 ▷사회적 효과 평가의 3요소로 나눠 요소당 ±5점을 기준으로 자유 점수를 부여한 후 합산한 기본점수를 바탕으로 ±20% 변동률을 적용해 계산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 구미의 전자, 포항의 철강과 더불어 섬유, 건설, 유통 등의 호황으로 상승세를 보이던 (주)대구시 주가는 1995년 상인동 도시가스 폭발이라는 지역적 악재와 IMF라는 국가적 악재가 겹치면서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해, 2003년 중앙로역 지하철 방화참사라는 악재로 최저점을 형성했다. 이후 ▷U대회 ▷혁신도시 ▷세계육상선수권 대회 유치 ▷지식경제자유구역 후보지 선정 등 호재가 잇따랐지만 건설경기 부진과 지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경제적 기폭제가 아직 등장하지 못해 두드러진 상승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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