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 인생에도 꿈은 있다" 연극 '하이라이프'

입력 2008-02-29 07:30:28

무미건조한 무대와 세트, 공연 내내 쏟아지는 노골적인 대사와 욕설, 더럽고 폭력적인 남성들, 마약투여와 환각상태, 삶에 대한 비뚤어지고 이단적인 시선…. 이를 누그러뜨려 줄 여성적 분위기는 없다. 여배우는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거친 연극 '하이라이프'는 '밑바닥 인생들에게도 꿈은 있다'는 이야기다.

'인간 쓰레기' 네명의 남자가 펼치는 '하이라이프'는 시종 웃기며 거칠다. 교도소를 밥먹듯 드나드는 딕(이광희). 그는 말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며 잔머리의 대가이다.

소매치기한 지갑은 될 수 있으면 돌려주려고 애쓰는 도니(이중옥). 오장육부가 망가져 늘 비척거리지만 손재주 하나만은 최상급이다. 욱 하는 성질의 무식한 사고뭉치 벅(이홍기). 그는 험악한 인상에 폭력을 밥먹듯 휘두른다. 잘생긴 얼굴로 약은 짓을 행하는 대학생 빌리(권혁)도 나쁜 녀석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약물중독에, 별 희망이 없어 보이는 밑바닥 인생이란 점이다.

관객과는 동떨어져 있는 듯한 보통 시민과는 다른 네 남자. 그러나 이들의 삶이 평범한 관객의 삶과 중첩되는 것은 왜일까. 이 무식하고 더럽고 몹쓸 네 남자가 인생역전을 꿈꾸며 뭉쳤기 때문이다. 평범하고 내세울 것 없는 우리 역시 흔히 술잔을 앞에 놓고 '인생역전'을 꿈꾸지 않는가.

네 남자가 인생역전을 꿈꾸며 계획한 일은 은행털기. 어차피 순리대로 살아서는 희망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이들은 한탕을 노린다. 연극의 제목이기도 한 '하이라이프(High Life)'를 꿈꾸며 은행 ATM기를 털려던 그들의 계획은 뜻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한다.

연극 '하이라이프'는 충격적인 소재, 적나라한 대사, 치명적인 폭력, 세상에 대한 뒤틀린 시각 등 어느 모로 보나 불량 연극이다. 그러나 관객은 이 몹쓸 네 주인공의 삶에 대해, 마약 중독자이자 세상의 아웃사이더들의 '잘 살아보고 싶은 욕망'을 감지하면서 공감을 확인한다.

연극 '하이라이프'는 맘마미아의 '해리' 역으로 알려진 캐나다 출신의 배우 겸 작가 리 맥두걸의 작품으로 1995년 캐나다에서 초연된 후 1996년 도라 메이버 무어상 'Mid-Size Theatre' 부문 최우수 연극상을 수상했다. 1997년 캐나다 총독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MBC 드라마 '뉴하트'의 박광정과 대구의 젊은 연출가 추동균이 공동연출을 맡았다.

▶3월 14∼4월 26일(매주 월요일 및 4월 6일 공연없음). 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5시, 8시, 일요일 오후 5시. 열린극장 마카. 053)421-2223.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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