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인 지난 6일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느닷없이' TV광고에 나타났다. 한 대학 특강에서 현대중공업을 자랑하던 생전 모습이었다. 그냥 보기엔 기업 이미지 광고였지만 실은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 홍보물이었다. 설 연휴에 정 최고위원을 자연스레 화젯거리로 올리자는 것이고, 차기 대권 포석이라는 것 정도는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내세운 전략은 통했던 것 같다. 그 며칠 동안 모인 자리마다 정몽준 얘기였다.
사람들은 앉아서 천리를 봤다. 그는 분명 다음 대선을 노려 한나라당에 들어갔고,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당장 이번 총선부터 세력 확보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사실 그가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MB) 후보 지지를 선언했을 때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교감이 없었으리라고 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의 미래에 관해 깊은 눈빛이 오갔으리라는 것쯤은 상식이다. 주고받는 게 있어야 몸을 일으키는 게 정치판의 생리다.
정 최고위원은 한나라당에 혈혈단신으로 입당했다. 그런 그에게 MB쪽은 최고위원 자리를 깔아주고 미국에 외교특사로 보내며 거물로 키우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혼자다. 여러 의원이 뒤따르는 박근혜 전 대표처럼 계보를 거느리고 싶은 욕심이 굴뚝같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4'9 총선을 호기로 여길 것이다. 이런 저런 출마자들에게 도움을 주어 내 편을 만들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이미 움직이는지도 모를 일이다. 선거는 돈이다. 엄격한 선거법이 있고 정치자금법이 세졌다지만 정치인들은 여전히 자금 때문에 골머리를 싸맨다.
정 최고위원의 주식 재산은 4조원이 넘는다. 한국 최고 주식 부자다. 형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보다도 훨씬 많고 이건희 삼성 회장도 그한테는 절반이다. 지난 한 해 조선업 주가 급등으로 배당받은 현금만 615억원이다. 역시 최고다.
그가 대권을 꿈꾸는 것은 돈뿐 아니라 나름의 대중성을 자신해서일 것이다. 우선 '현대공화국' 울산에 확고한 텃밭을 두고 있다. 그곳(동구)에서 1992년 이래 내리 5선을 했고 이번에 6선에 나선다. 그 역시 최대 표밭인 영남에 확실한 지역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믿는 구석은 2002년 대선 당시 확인한 대중적 지지일 것이다. 그해 여름 여론조사서는 선두까지 치고 올라갔었다. 한때나마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누른 것이다. 월드컵 덕이었다 하나 이후도 20%대, 줄곧 2위를 달렸다.
여기에 대중적 흡인력이 강렬한 축구가 있다. 그는 1993년 이래 장기집권하고 있는 대한축구협회장에 FIFA 부회장이다. 젊은이들에게는 '축구 정몽준'으로 더 알려져 있을 정도다. 오는 2010 남아공월드컵은 대선을 2년 앞두고 열린다. 2002년처럼 월드컵 열기를 자신한테 옮겨 붙일 또 한번의 찬스다. 보나마나 축구협회장 연임(5선)과 한국 축구의 월드컵 진출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부와 권력을 모두 쥐려는 야망 앞에 장애물이 없을 수 없다. 첫째 단일화 전력이다. 일전에 박 전 대표 쪽 좌장인 김무성 의원이 직격탄을 날렸듯 한나라당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장본인이다. 단일화 직전 매일신문 여론조사는 이회창 35% 정몽준 22% 노무현 18%였다. 그러나 단일화 효과로 노 후보가 급상승했고 3자구도가 깨진 선거는 2.3%포인트 차로 뒤집어졌다. 한나라당 당원에게 쉽게 털어 내기 힘든 원죄다.
둘째는 이 대통령 변수다. 한나라당 입당 과정은 물론이고 같은 현대家(가) 출신에 CEO형이란 점에서 대통령과 아삼륙 관계다. 이 대통령이 성공해야 그도 유리한 환경을 맞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과 맞서 존재감을 찾는 박 전 대표와 사뭇 다른 처지인 것이다.
셋째는 독선적 리더십이다. 축구계에는 축구협회를 독단적으로 끌고 가며 사조직화했다는 불만이 적잖다. 기업 경영과 관련한 '제왕적 일화'들도 꽤 있다. 덧붙여 한국 축구가 2010년 월드컵에 진출하느냐, 현대중공업이 계속 잘나가느냐도 변수일 것이다.
정몽준에게 2012년은, 또 한번의 일장춘몽일지, 바라는 대로 현실일지, 먼 꿈이다.
논설실장 金 成 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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