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단둘이 월세방에서 살고 있는 이상훈(가명·16)군은 지난 22일 생각지도 못한 '따뜻한 선물'을 받았다. 얼마 전 집을 다녀갔던 사회복지 공무원들이 다시 방문해 난방유 1드럼(200ℓ)을 보일러에 채워준 것. 이군은 "기름을 아끼려고 초저녁과 새벽녘에만 잠깐씩 보일러를 틀었어요. 이제 일부러 동생을 꼬옥 끌어안고 자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기름값이 없어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어려운 이웃에게 난방유를 전달하는 복지 사업이 인기를 얻고 있다.
달서구청이 2004년 겨울부터 시행 중인 이 사업은 이웃돕기를 통해 모인 성금이나 쌀, 연탄 등을 난방유로 바꿔 어려운 이웃에 전달하는 '연료뱅크' 사업. 기초수급권자 외에 생계보조를 받지 못하는 홀몸노인, 소년소녀가장 등 차상위 가정을 직접 발굴해 혜택을 준다는 점이 특색이다.
최근 난방유 선물을 받은 김성희(가명·72) 할머니는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동사무소 보조금도 타지 못했다"며 "전기장판 한 장으로 겨울을 나야 했는데 이제 더 바랄 게 없다"며 따뜻해진 아랫목을 쓰다듬었다. 이영옥(73) 할머니도 "이제야 사람 사는 집 같다. 시린 무릎이 좋아질 것 같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사업을 담당하는 공무원들도 색다른 보람에 즐거워하고 있다. 성당2동사무소 정경희(34·여)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은 "할머니들이 붙인 제 별명이 '냉방 탐정'"이라며 "골목골목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아야 하지만 기름을 받고 기뻐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연료뱅크 사업은 지난해 11월~이달 말까지 250여 가구에 1드럼씩 4천500만원 상당의 난방유를 선물한 것을 비롯해 4년간 총 700여 가구가 혜택을 받는 등 해가 갈수록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달서구청 주민생활지원과 이승철 행복나눔센터장은 "연말에 성금을 현금으로 드리면 아까워서 쓰지 못하는 어르신이 많아 이 사업을 기획하게 됐다"며 "한 달치 기름에 불과하지만 피부에 와닿는 도움이 되기 때문에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벤치마킹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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