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못할 가슴을 안고 사십니까 영화의 치유적 힘을 느껴보십시요
"그렇게 흥행대작이라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다 늙어 할아버지가 된 동생이 형을 생각하며 '형'이라고 부르는 그 대목, 쓰라리게 울음을 안으로 삼키며 우는 그 장면을 보면서 저도 인간의 상처를 느꼈어요.…(중략) 회상조차 하기 싫은 그 상처를 들추면서 이야기 하는 사람도 울고, 듣는 사람도 울어서 정말 대성통곡하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제 곪아터진 상처를 햇볕에 내 놓고 말려야 할 것 같습니다. 상처를 너무 안으로 감춰온 나날들이었습니다. 상처 받은 사람이 죄인은 아니잖아요. 영화를 통해서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아픔이 조금이라도 위로 받기를 바랍니다"
최근 대구 여성의 전화로부터 두 번이나 좋은 방송으로 선정된 '힐링 시네마'(대구MBC, 토요일 밤 10시 50분, 이중원 PD 연출)의 사회적 기능을 단적으로 대변해주는 게시판 글이다. 남과 달라서 외롭고, 삶에 지친 이들에게 영화는 종종 갈등 해결의 열쇠가 된다. 그래서 영화를 영혼에 놓는 주사라고 하지 않던가?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일련의 영화를 보여주고, 영화속 인물과 소통하는 법을 알려주어서 치유의 길로 이끌어주는 '시네마 테라피'의 개척자 심영섭은 영화평론가이자 심리학과 교수 그리고 새로 문을 연 영상치료센터 '사이'와 한국영상응용연구소(www.healingcinema.co.kr) 대표로서 대학 기업체 방송가 충무로를 휩쓸며 상종가를 치고 있다.
하루를 25시로 쪼개써도 모자랄 그를 라이프매일 영화 필진으로 잡기 위해 최근 두 번 만났다. 방송가 인근 허름한 밥집에서 저녁 대신 김치찌개에 막걸리 두어잔을 기울이는 모습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여성평론가로 산다는 것의 무게감과 쓸쓸함을 느끼게하더니, 수시로 걸려오는 어린 딸과의 통화에서는 양보할 수 없는 모성의 강인함을 보여준다.
"엉, 우리 꼬롱(딸 유진이의 애칭)이야? 엄마는 대구야. 좀 있다 기차 탈거야. 알았어. 갈 때 칼라 풀 사갈께"
그 자신 결혼 이혼 사별 재혼 등으로 점철된 질곡의 삶을 살았지만, 지금은 재혼한 남편 두자녀와 함께 둥지를 틀었다. 서강대 생명공학과, 고려대 임상심리학과 석박사, 한양대 임상심리학 인턴, 백병원 레지던트 과정까지 밟고서도 녹록치 않은 '글밥' 을 먹고 살겠다고 영화평론으로 돌아섰던 심영섭은 영화를 보면서 죽어도 좋다고 여기지 않을까싶을 정도로 강한 소명의식을 지니고 있다. 시네마 테라피를 보급하면서부터 그는 청소년과 외국인 노동자 국제이주여성 관련 영화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과거에는 영화가 단순히 만원으로 즐길 수 있는 행복 내지는 유희의 대상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실제 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치료까지 영역이 넓어진 셈이죠"
영화가 세상에 줄 수 있는 청사진을 그려나가는 것이 바로 '시네마 테라피'의 진수라고 말하는 그는 영화가 세상에 힐링, 비전, 스피리트 3가지를 선사한다고 말한다. 영화가 상처받은 이들에게는 힐링(치유)을, 미래를 설계하는 이들에게는 비전을,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을 위해서는 영감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 면이 없지 않다.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를 보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폴링 인 러브'를 보면 메마른 감성에 물기가 솟아오르고, '파리 텍사스'나 '기쿠지로의 여름'을 보면 삶에 대한 통찰과 위안을 얻는다. 또 9'11테러로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영화 '레인 오버 미'가 들려주고, 구원과 용서에 대한 내밀한 고백을 영화'밀양' 이 보여준다. 심영섭이 여러 갈래로 꼽는 힐링 시네마들이다.
그래서 기업체에서도, 병원에서도, 대학에서도 힐링 시네마에 빠져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 세리경제연구소를 비롯한 삼성 전 계열사와 현대 중역회의, 포스코 등 각 기업체들이 미래를 위해 힐링 시네마 연수를 하였다. 일부 의대에서는 영상치료가 치료의 보조적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비단 환자들을 위한 치료용으로 영화를 쓰는 것은 아니다. 더 광범위하게 영화치료가 선호되고 있다. 바로 일반인을 위한 힐링 시네마이다.
"힐링 시네마를 통해 치유된 사람들로 구성된 '힐링 소사이어티'를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영화를 보면서 누가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서로 다름과 차이를 관용해주는 똘레랑스 정신을 더 키워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대구사회에서 더 똘레랑스 정신이 필요합니다"
심영섭은 성역할을 초월해서 서로 보듬고 아껴주는 가치를 치유적 영상보기로 담고 싶어한다. 심리학과 영화를 섭렵한 인물이 되겠다는 큰 뜻을 담아 영화 치료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심영섭(본명 김수지)은 다음주부터 '올 뎃 시네마'를 연재한다.
최미화 기자 magohalm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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