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로 민족계몽에 앞장섰던 우강 송종익이 1887년 2월 27일 대구 계산동에서 태어났다. 1906년 미국으로 유학간 뒤 재미 독립운동단체인 공립협회에 가입하면서 항일민족운동을 시작했다.
1908년 일제 통감부의 미국인 외교고문 스티븐스를 암살한 전명운 장인환의 재판후원회를 결성해 재무로 활동하면서 변호사 교섭 및 후원 경비 조달 등에 앞장섰다. 1913년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 등 8도 대표가 흥사단을 창단할 때 경상도 대표로 참가해 이사장까지 역임했다.
이후 안창호와 함께 군자금 마련을 위해 북미실업주식회사와 흥업회사를 설립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1919년 재미 한인들의 통합 민족운동 단체인 대한인국민회의 재무로서 임시정부 건설의 경비조달에 참여했다.
1941년 하와이에서 개최된 해외한족대회에 북미 대한인국민회 대표로 참가,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결성되자 집행부위원으로 선임되는 등 해방 때까지 미주지역에서 국권회복 및 한인사회의 인권확보를 위해 활동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재미한족대표단 일원으로 일시 귀국했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1956년 사망했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899년 여성교육가 김활란 출생 ▶1989년 부시 미국 대통령 방한
정보관리부 성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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