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겨울, 낚아야 제맛…'물의 나라' 화천

입력 2008-02-27 07:54:36

'짙은 안개 속으로 새벽강은 흐르고/ 나는 그 강물에 여윈 내 손을 담그고/ 산과 산들이 얘기하는 나무와 새들이 얘기하는 그 신비한 소릴 들으려 했소/ 강물 속으론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히며 흘러가고/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또 가득 흘러가오.' (정태춘 '북한강에서')

물줄기는 굽이굽이 돌며 계곡을 그려낸다. 막혀 모인 물줄기는 호수가 되고, 답답함에 한숨 쉬듯 물안개를 토한다. 댐과 호수로 가로막힌 북한강 수면 위로 물안개는 종일 바람을 타고 일렁인다.

강과 길과 호수가 하나되는 곳, 강원도 화천은 '물의 나라'다. 2개의 댐과 2개의 호수, 험준한 준령을 넘어드는 강은 곳곳에 비경을 만들어낸다. 대구에서 화천까지는 320km. 생각날 때 냅다 달릴 만큼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물길을 끼고 도는 길을 넘으며 삶을 반추할 호젓함을 맛보고 싶다면 그리 멀다 할 곳도 아니다.

◆5번 국도를 따라=춘천에서 화천을 잇는 5번 국도는 멋진 호반 드라이브길이다. 5번 국도를 만나는 길은 꽤 수월하다. 경부고속도로 금호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춘천IC까지 내쳐 달리면 된다. 도로 사정이 좋은 편이어서 3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춘천IC에서 내리면 이내 국도 5호선을 만난다. 도로를 따라 춘천시내를 통과하면 춘천호반의 전경이 이어진다. 해마다 여름이면 국제 인형극제가 열리는 춘천인형극장과 소양강처녀상도 볼거리지만, 춘천시내에 꼬리를 무는 차량들과 8차로 도로는 나들이 기분을 느끼기에는 너무 번잡하다.

하지만 아직 실망하긴 이르다. 5번 국도의 참맛은 춘천호부터 이어진다. 춘천시내를 통과해 성수약수터를 지나면 춘천댐 삼거리가 나오고 춘천호가 펼쳐진다. 아직 하얗게 얼어붙은 북한강과 강변은 곳곳에 하얀 눈이 덮여 있다. 강 위에는 하얀 도화지에 까만 점을 찍은 듯 얼음 낚시꾼들이 점묘화처럼 이어진다. 도로는 꽤 한적하다. 하지만 군인들을 실을 트럭이나 군 작전 차량들이 천천히 달리며 앞을 막는다. 이곳이 전방과 멀지 않음을 느낀다. 도로변에는 유사시에 북한군의 진격을 지연시키기 위한 군 시설물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북한강을 끼고 화천읍에 들어서면 붕어섬 유원지가 눈에 띈다. 붕어섬은 춘천댐 담수로 인해 만들어진 섬. 붕어섬으로 들어서는 다리 위에는 붕어 조각상이 금방이라도 펄떡일 듯하다. 강변을 따라 손을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의 뒷모습이 참 평화로워 보인다.

5번 국도를 따라가다 화천읍에서 화천교를 건너면 파로호와 평화의 댐을 거쳐 인제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461번 지방도로를 타면 평화의 댐으로, 460번 지방도로를 타면 파로호로 향한다. 화천교 안쪽으로는 지난달 27일 막을 내린 산천어 축제장이 있다.

◆춘천호에서 파로호까지=봄바람이 분다는 우수가 지났지만 화천에서는 여전히 겨울을 맛볼 수 있다. '땡땡' 얼어붙은 춘천호 위에 촌로들이 모여 앉아 빙어낚시가 한창이다. 낚시꾼들은 30cm나 얼어붙은 호수를 군데군데 깨고 낚싯대를 드리운다. 한 팔 길이의 낚싯대에 줄줄이 미끼를 달고 까딱까딱 약을 올리자 빙어가 냉큼 물려나온다. 오전 일찍부터 낚시를 즐긴 듯 구덩이에 20여마리의 빙어가 헤엄친다. 얼음이 쩡쩡거리는 소리에 움찔했지만 "그래야 괜찮은거다"라는 촌로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향이 대구 중구 대봉동이라는 한 노인은 "주말이면 수백여명이 춘천호로 몰려들어 빙어낚시를 한다"며 "엉덩이 붙이고 앉을 곳도 없다"고 했다. 호수 위로 몰아치는 늦겨울 바람이 아직 꽤 시리다.

5번 국도를 30분간 따라가면 화천읍이 나오고 460번 도로를 계속 올라가면 구만교를 만난다. 얼핏 평범해보이지만 역사는 간단치 않다. 구만교는 일제가 기초를 놓고,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소련과 북한이 교각을 놓았으며, 휴전 후에는 화천군이 상판을 놓았다. 4개국 합작품인 셈.

구불구불한 화천의 도로를 달리다 보면 새파란 호수와 산허리를 가르는 계곡을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물의 나라' 표지가 꽤 어울린다 싶다. 460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 대붕교를 건너면 '산속의 바다' 파로호와 마주선다. 파로호는 1944년 일제가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에 세운 수력발전소로 인해 생긴 호수다. 우리나라에서 축조 연대가 가장 오래된 호수이기도 하다. '파로호(波虜湖)'라는 이름에도 한국 현대사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한국전쟁 당시인 1951년 화천전투에서 국군이 중공군 수만명을 수장시킨 것을 기념해 이승만 대통령이 명명했다.

대포와 전차가 전시된 파로호 안보전시관을 지나면 파로호 선착장이다. 선착장에는 '물빛누리'라는 이름의 카페리호가 정박해 있다. 화천군이 8억원을 투자해 건조한 이 배는 파로호 구만리 선착장에서 평화의 댐까지 손님들을 실어나른다. 파로호를 끼고 돌자 10여곳의 낚시터가 눈에 띈다. 파로호는 잉어 붕어 쏘가리 등 각종 담수어가 풍부해 최고의 낚시터로 꼽힌다. 호수 곳곳에 인공어초를 조성해 물고기가 많고 겨울에는 빙어낚시도 일품이다.

화천읍내로 나와 행인에게 "화천에서 가장 맛있는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지체없이 돌아오는 대답이 '천일막국수'. 2대째 내려오며 바삭한 빈대떡과 매콤한 막국수가 궁합이 잘 맞다. 양념장에 비벼먹은 뒤 사리를 추가해 사골육수에 말아먹어도 좋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정우용기자 vin@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