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이라는 야구 투수가 있었다. 한때 전국 최고 몸값으로 프로가 된 선수였다. 선발로 20승, 마무리로 47세이브를 기록한 해도 있었다. 일본 미국까지 3개 나라 그라운드를 누볐다. 하지만 4년여 전 그는 돌연 은퇴했다. 그 후 이어지고 있는 직업은 언더그라운드 가수. 억대 연봉자에서 무명 가수로 변하자 "저놈 거지 됐네" 하는 소리가 피할 길 없이 따라붙었다. 그래도 이상훈은 "괜찮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 열심히 해 상응하는 보람을 얻으면 만족한다는 얘기였다.
중국에 천샤우쉬(陳曉旭)라는 연기자가 있었다. 20여년 전 '홍루몽'이라는 드라마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해 모르는 사람 없는 국민배우가 됐다. 하지만 그 4년 후 연예인 생활을 청산하고 사업의 길로 나섰다. 베이징의 큰 광고회사를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작년 이맘때쯤 그 자리마저 떠났다. 머리를 깎고 출가해 스님이 된 것이다. 함께 사업을 꾸리던 남편도 뒤를 따랐다. 道伴(도반)의 길을 택해 "부부로서의 인연은 이쯤에서 끝내기로 했다"는 그의 말이 매우 흔연하게 들렸다. 이 백만장자 가족의 재산은 이곳저곳에 나뉘어졌다.
이들은 왜 그 안온한 생활을 떠나 힘든 삶으로 향했을까. 모르긴 해도, 이들이 택한 길은 自由(자유)라 불리는 그것 아닐까 싶다. 스스로 自(자), 말미암을 由(유), 외부가 만들어둔 가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그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오는 요구에 순전히 따르는 일, 자신으로부터 말미암아 살기….
노무현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이 임기를 끝내고 落鄕(낙향)했다. 엊저녁 고향에서의 첫 밤을 보낸 그를 두고 어떤 신문 논객은 "드디어 자유인이 됐다"는 표현을 썼다. 그를 맞아 한나라당 당적의 김태호 경남지사가 했다는 환영사도 기억에 남는다. "노 대통령은 이 시대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느라 비난받았다. 그러나 오동나무는 100년 뒤에 거문고가 돼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제 그런 저런 평가는 역사에 맡기고 모든 집착을 놔 버리시라는 말로도 들을 수 있는 대목이다.
청와대를 떠나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보고 싶다는 노 전 대통령의 소망이 애처롭게 들렸던 게 엊그제였었다. 정말로, 시장바닥 다니며 서민들과도 정답게 대폿잔 나누는 '낙향해 자유인이 된 대한민국 첫 전직 대통령'을 보고 싶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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