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논제는 경상북도교육청 사이버 논술 교실(http://kben.org)의 2007학년도 1학기 논술 제3회 고등학교 2학년용 문제입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 및 가치 실현이 가능한가를 묻고 있습니다. 인류는 과학 문명의 발달로 인해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학 기술의 발달이 실제로 삶의 질을 향상시켰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분명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인류 사회가 겪고 있는 이러한 모순적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는가에 대해 다양한 방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문제 게시판' 307번 자료와 첨삭 지도(고) 게시판의 737번 자료를 참고하세요.
[A]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크게 변화하고 있다.(1) 발달한 기계의 사용을 통해 여러 가지로 편하게 생활하고 있다.(2) 공장에서는 위험한 작업들을 대신해 주어 안전사고가 일어날 확률을 줄여주거나, 세밀한 작업도 인간보다 더 잘 할 수 있게 되었다.(3) 그런데 이렇게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신함으로써, 인간소외 현상을 겪게 되었다.(4) 사람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5)
[B]제시문 (가)는 기계로 인해 인간의 많은 삶이 편리해졌다고 말한다.(6) 단순노동이 줄어들면서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7) 대신 그에 비례해서 사람의 능력이 더욱 중시되어 피나는 경쟁을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8) 그렇게 능력을 중시함으로써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더욱 소외당하게 된 것이다.(9) 오히려 이전보다 인간들은 더욱 힘들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10) 그리고 기계의 발전을 통해 인간의 생활을 향상시킨다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태도에 따라 또 달라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11)
[C]제시문 (나)는 기계로 신체를 대신하고 성능을 더 좋게 한 로봇인간에 대해 말하고 있다.(12) 이런 로봇인간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13) 이것이 인간에게 이식된다면 어떻게 될까?(14) 이 또한 인간의 태도에 따라 도움이 될 수도, 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15)
[D]제시문 (다)는 정신지체 소녀 애쉴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16)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부모의 뜻에 의해 영원히 아이의 몸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 것이다.(17) 의학에 의해 자신의 신체가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는 방법을 제거당한 것이다.(18) 비단 애쉴리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기술이나 의학, 타인의 의지에 의해 자신의 삶을 방해받고 있다.(19) 얼마 전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20) 식물인간으로 지내던 한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의 남편과 그녀의 가족이 안락사 문제로 서로 싸우게 된 것이다.(21) 남편은 그녀가 편안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의학을 통해 안락사를 시키자고 하고, 그녀의 가족들은 그것을 반대하는 것이었다.(22) 비록 그녀가 의학의 힘으로 그동안 삶을 지탱해 왔다고는 하지만, 기술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그녀의 삶을 끝낸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23) 기술이 인간을 좌지우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24)
[E]이렇게 기술은 우리 생활의 여러 부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25) 하지만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26) 기술을 통해 생활의 편리를 도모해도, 기술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27) 기술을 통해 더욱 발전하고, 스스로를 확고하게 지키는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28)
김경혜(경주여고 2학년)
논술에 있어서 논제 분석은 매우 중요합니다. 논리적 글쓰기의 방향이 논제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논제에서 벗어난 동문서답(東問西答)식의 논술은 아무리 그 내용이 우수해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학생들은 논술이란 '주어진 조건에 따른 논리적 글쓰기'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논제의 요구 조건은 매우 까다롭습니다. 최근 각 대학의 논술 문제 경향도 이와 비슷합니다. 문제 해결형 논술에서는 주어진 문제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그 원인을 찾아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문제 유형입니다.
학생들은 ①제시문 (가)의 논지를 파악하여 그 관점에서 ②제시문 (나)를 평가하고 이를 통해 ③제시문 (다)의 쟁점을 활용하여 ④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논술해야 합니다. 단 1400자 내외(띄어쓰기 포함)의 분량으로 작성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이 논제의 핵심은 과학 문명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언급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제시문 (다)의 쟁점'을 잘 파악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과학의 역기능과 순기능이 어떻게 인간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지 분석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실현 방안'을 모색하여 논술하면 됩니다.
제시문 (가) 내용은 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즉, 과학 기술의 가치 중립적 입장에서 인간이 주체적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사용하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는 암울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과학 기술의 가치 중립적 입장이란 '자연 현상을 기술하는 데에 있어서 얻게 되는 과학의 법칙이나 이론으로부터 개인적 취향이나 가치관에 따라 결론을 취사선택할 수 없다'는 점과 '과학으로부터 얻은 결론, 즉 과학 지식이 그 자체로서 가치에 관한 판단이나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과학 기술을 주체적으로 사용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몫은 '과학'의 발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연구하는 인간에게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제시문 (나)는 과학기술의 발달 양상을 소개하면서 그것이 인간의 행복지수를 높일지는 의문이라는 회의적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첨단과학에 의해 트랜스 휴먼(Trans Human·초인·超人)이 탄생한다면 종래의 천부인권(天賦人權)의 개념은 수정이 불가피해질 것입니다. 트랜스 휴먼 기술의 목적은 자동차 부품을 교환하듯이 손상되거나 노화한 장기를 교체하여 결국 '무병장수'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 수명의 연장만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는 없습니다. 또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만들어진 것들을 조합한 것을 실존적 존재인 인간으로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인조인간의 천부 인권을 인정한다면 인공 지능에 따라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로봇에게도 천부 인권을 인정해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면 진정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는 실종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시문 (다)에서 인간의 윤리적 기준은 어디까지로 삼아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을 보여주고 있는 기사입니다. 보편적인 사회 규범으로 본다면 설혹 정신의 성장이 멈춘 아이일지라도 육체적 성장마저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아이의 '덜 불행한' 미래를 위해서 윤리성이 양보해야 하는 것인지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9년에 사회복지 시설 내 장애인들의 강제 불임 수술로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없는 장애인들에 대한 강제불임은 적자생존의 명분으로 우생학에 토대를 둔 명백한 인권침해 행위이자, 반윤리적인 발상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와 불편을 예방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출산을 사전에 막기 위하여 불임을 유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신지체인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유 능력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학생의 글은 논술의 기초가 미흡한 학생들이 보여주는 예시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논술을 제대로 접하지 못한 학생들이 글을 쓸 경우 근본적인 결함을 보이는 것이 '논제 일탈의 오류'입니다. 이 논제가 요구하는 최종 종착지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실현'입니다. 그런데 (4)와 같이 글의 핵심 내용이 '인간소외 현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주어진 논제를 잘못 분석함으로써 논술의 방향이 어긋나고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논제에 충실한 글쓰기를 하려면 논제를 꼼꼼히 분석해야 합니다. 대개 대입 논술의 논제는 두 가지 이상의 복합 질문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러 질문이 섞여 있는 경우, 핵심이 되는 개념을 먼저 분리하여 이에 대한 논의부터 이루어져야 합니다. 주어진 제시문의 공통적인 사항은 과학의 순기능과 역기능입니다. 즉 현대문명사회에서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안을 제시하면 됩니다.
[B]단락에서 과학의 양면성을 언급하고 있지만 제시문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시문 (가)의 논지는 과학은 가치중립적 입장에 있으므로 인간이 주체적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학의 가치중립적 입장에서 제시문 (나)의 트랜스 휴먼 기술에 대해 평가를 내려야 합니다.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에 대해 균형 있는 논술을 전개하여야 합니다.
[C]단락에서 (14), (15)에서 주어진 조건에 따라 평가를 하기보다 논제를 다시 묻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즉, 수험생이 출제자에게 도리어 질문하는 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는 논술의 기초가 없는 학생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입니다.
[D]단락에서는 쟁점을 파악하여야 합니다. 인간의 윤리적 규범을 절대적 기준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상대적 기준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합니다. 그런데 '안락사 문제'를 예로 들어 절대적 윤리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고 또한 지금도 많은 논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총평을 하자면 주어진 논제는 기초 논술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학생들이 논술하기엔 조금 어려운 문제입니다. 논술의 기초를 다지지 않고 성급히 논술문을 작성할 경우 위의 학생글과 같은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은 논술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실망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대입논술은 조건에 맞는 글쓰기임을 꼭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최병영(경주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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