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샹즈/라오서 지음/심규호·유소영 옮김/황소자리 펴냄.
인력거꾼 샹즈는 무작정 '상경'한 사람이었다. 배운 게 없고 가진 돈이 없었지만 젊고 꿈이 있었다. 샹즈는 맑은 영혼과 넓은 어깨, 튼튼한 두 다리를 가졌으며 남들보다 빨리 달렸다. 그는 부지런히 돈을 벌어 자신의 인력거를 사고, 착하고 어여쁜 아내를 구하고 싶었다.
샹즈는 쉬지 않고 달렸고 함부로 돈을 쓰지 않았다. 술을 마시지 않았고 담배를 피우지도 않았다. 한푼 더 받기 위해 흥정하는 대신, 더 부지런히 달렸다. 웃돈을 받지 않고도 험한 길, 어두운 길을 달렸다.
"좀 쉬어가며, 대충해라." 주변에서 조언했지만 그는 웃을 뿐이었다.
샹즈는 젊고 건강했으며 잘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기 소유의 인력거를 살 수 있다는 꿈이 있었다. 꿈이 있었기에 그는 지치지 않았고,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일했다. 사납금을 내며 영업용 인력거를 끌 때도, 누군가에게 고용돼 전세 인력거를 끌 때도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샹즈를 좋아했다.
결국 샹즈는 100원을 주고 자기 인력거를 장만했다. 그의 인력거는 햇빛 속에서 은처럼 빛났다. 그가 하도 닦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인력거는 단순한 인력거가 아니라 영혼이며 미래였다. 자기 인력거를 장만했으니 버는 돈은 모두 자신의 돈이었다. 이렇게 몇 년만 더 열심히 일하면 인력거 한 대를 더 장만할 수 있고, 대여료를 받을 수 있겠다는 또 다른 희망이 생겼다.
그러나 사람살이에는 액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샹즈의 첫 액운은 전쟁과 함께 왔다. 군대가 성밖에 몰려왔고, 샹즈는 꽤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욕심에 성밖으로 손님을 태우고 나갔다가 군대에 붙들렸다. 인력거를 빼앗기고 그는 부역꾼이 돼 군대를 따라 어딘지도 모를 땅을 헤맸다.
천신만고 끝에 탈출했지만 샹즈는 빈털터리나 다름없었다. 탈출할 때 훔친 낙타 3마리를 팔아 30원을 챙긴 게 고작이었다. (샹즈의 별명 '낙타'는 그가 낙타를 훔쳐 팔아 큰돈을 벌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지은 것이다.)
비록 인력거를 잃었지만 다시 시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맥이 빠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 사건 후 희망만 보였던 샹즈의 눈에 누추한 삶을 이어가는 인력거꾼의 현실적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시 내 인력거를 장만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갖겠다.' 샹즈는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선배 인력거꾼들은 "아내와 아이는 먹이고 입혀야 할 짐"이라고 답했다. 늙은 인력거꾼의 굶주림과 피로를 보며 샹즈는 자신의 미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달리고 달리다가 길바닥에서 늙어 죽는 것이 인력거꾼의 운명'이라는 절망적인 생각에 휩싸이기도 했다.
몹시 더운 여름날, 손님을 태우고 반쯤 달려갔을 때 갑자기 큰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장대비는 샹즈의 옷을 적시고 몸을 적시고 몸을 차갑게 식혔다. 군대에 잡혀갔다 온 이래 몸이 약해진 샹즈는 큰비에 앓아 누웠다.
비는 세상에 골고루 내렸는데 인력거에 타고 있던 부자는 몸이 상하지 않았고 가난한 샹즈는 상했다. 비는 부잣집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는데 가난뱅이들이 세든 집은 무너져 내렸다. 깔려죽은 사람도 있었다. 비에 흙벽이 허물어졌고, 가난한 사람들은 벽 대신 판자를 가리고 지내야 했다.
큰비가 내리자 시인들은 연잎에 맺힌 물방울과 쌍무지개를 노래했다. 그러나 가난뱅이들은 앓아 누웠고 그 집 자식들은 굶주려야 했다. 비는 공평했지만 사람이 저마다 발 딛고 선 땅이 공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샹즈는 여러 날을 누워서 지냈다. 몸이 다 낫지 않았지만 손해와 약값을 메워야 했기에 일어나 달렸다. 그래서 다시 병이 도졌다.
그렇게 희망은 퇴색해갔다.
샹즈는 자신의 희망이자 전부였던 인력거, 반짝반짝 닦곤 하던 인력거에도 무심해졌다.
'인력거는 그저 인력거일 뿐이야.'
인력거가 희망이 아니라 그저 인력거로 전락했을 때, 샹즈는 더 이상 꿈을 가진 젊은이가 아니라 그렇고 그런 인력거꾼이 됐다. 그는 인력거꾼 이상이 될 수 있었으나 이제는 인력거꾼 밖에 될 수 없었다. 그의 미래는 늙고 초라한 인력거꾼일 뿐이었다. 희망을 잃어버린 노동자가 기계적으로 일하며, 할 수 있는 한 게으름을 피우는 것과 같다.
샹즈는 일을 적게 하고 돈을 더 벌 수 있기를 바랐다. 덜 수 있는 한 수고를 덜어야 하고 힘을 아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손님과 흥정하느라 다퉜고, 웃돈을 내지 않으면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 이전에 그를 좋아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딱한 사연을 늘어놓으며 구걸하기도 했다. 일하지 않고 돈을 버니 얼마나 이득인가.
샹즈는 이제 저축하지 않았다. 좋은 것을 먹었고, 술 마시고 싶으면 마셨다. 여자가 필요하면 창녀촌을 찾았다. 그래서 성병도 생겼다. 이제 그는 겨울옷을 보관하지 않았다. 다시 겨울을 날 준비 따위는 하지 않는 것이다. 눈앞의 일만 생각하는 하루살이 인생이 돼버린 것이다.
돈이 없으면 벌어야 마땅하지만 그는 버는 대신 안 썼다. 세수도 이도 닦지 않았다. 체면은 차릴 필요는 없었다. 깔끔하고 선하며, 부지런하던 샹즈는 수척하고 더럽고 야비한 하급 인력거꾼이 됐다.
그는 가짜 동전을 내고, 다른 사람 담배를 얻어 피웠다. 내가 부당한 득을 챙기면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것이니 세상에 대한 복수도 됐다. 결국에는 타인의 목숨도 팔았다. 타인의 목숨을 고발한 대가로 그가 받은 것은 돈이었다. 돈과 향락을 얻을 수 있다면 그는 무엇이든 팔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샹즈는 스스로를 파멸시켰다. 그에게도 변명거리는 있었다. 샹즈는 자신의 모든 불행과 악행을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세상 탓으로 돌렸다.
이 소설은 왜곡된 개인주의가 당사자는 물론이고 사회를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읽는 내내 '희망'이 무엇인가를 곱씹게 한다. 샹즈를 지치지 않고 달리게 했던 힘은 '튼튼한 다리'가 아니라 '희망'이었으니까. 385쪽, 1만3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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