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후 소련에 대한 프랑스 지성계의 태도는 온정적이었다. '지구상 최초로 공산혁명을 성공시킨 소련은 마땅히 지지를 받아야 한다' '소련을 공격하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를 돕는 이적행위다' 이런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여기에는 소련이 불평등, 인간소외 등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었다.
이런 믿음은 소련에서 대규모 숙청과 강제수용소라는 국가폭력이 자행되고 있음이 확인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식인들은 자신의 믿음을 접는 대신 언어의 유희라고 할 수밖에 없는 교묘한 논리로 소련을 감쌌다. 메를로퐁티는 폭력 그 자체를 없애기 위한 폭력은 정당하다는, 이른바 '진보적 폭력론'을 만들어냈다. 사르트르는 "스탈린주의는 마르크시즘의 최종 귀결은 아니기 때문에 강제수용소를 문제삼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뒷날 사르트르는 1956년 헝가리 노동자 봉기를 소련이 무력으로 진압하자 소련과 관계를 단절했다)
이들은 프랑스 지식인 대표로 소련을 방문했던 소설가 앙드레 지드의 말에 조금만 귀를 기울였어도 소련에 대한 맹신을 피할 수 있었다. 지드는 1936년 펴낸 '소련기행'에서 '소련은 세계에서 가장 자유가 없고, 가장 억압적이며, 가장 공포에 차 있고, 가장 군신관계에 있는 나라'라고 했다.
사회주의에 대한 지식인의 맹목적인 경도는 엄청난 인적 물적 희생을 초래한 문화혁명에 대한 태도에서도 재연됐다. 프랑스의 좌파 사상가인 루이 알튀세르는 문혁을 '상부구조인 대중적 이념을 바꾸려는 현대사 최초의 진정한 혁명'이라고 했다. 미셀 푸코는 '근대적 억압과 결별하려는 시도'라고 했는가 하면, 프레드릭 제임슨은 '60년대 해방정신의 진수' '대중 주체화의 위대한 실험'으로 치켜세웠다. 이들의 대열에 문혁을 '웅장한 인간개조의 실험, 인간제일주의, 보다 깊은 민주주의'로 찬양한 리영희씨도 있다.
이들에게도 문혁의 재앙을 경고하는 소리가 있었다. 문제는 듣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오슬로국립대학의 박노자 교수에 따르면 문혁에 대한 '현실적인' 서술이 이미 1970년대 중반에 나왔으며 아리프 디를리크 같은 중국현대사의 권위자들은 문혁을 '보수화돼가는 혁명 이후의 사회를 다시 급진화하려는 좋은 시도로 시작했다가 실패한 실험'으로 진단하고 있었다.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가 대선 참패 극복을 위해 시도한 '종북(從北)주의' 청산이 자주파(NL)의 반발로 무산되면서 심상정 비대위 대표 등 평등파(PD)가 새로운 진보정당 창당에 나섰다. PD파 신당이 만들어지면 민노당은 NL당으로 축소될 것이다.
NL에게 북한과 김정일 체제는 합리적 판단의 대상이 아닌 종교 같은 것이다. 이들은 또 남한은 친일파들이 만든 정통성 없는 부끄러운 체제고 북한은 항일 독립운동 때부터 정통성을 갖고 있었다고 단정한다. 그래서 북한에 대해서는 모든 게 정당화된다. 주대환 전 민노당 정책위의장의 진단이다.
과연 그럴까. 고난의 행군이라고 한 1995년부터 1996년까지 150만~350만명을 굶겨 죽인 것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인가. 권력의 부자 세습에 지배자를 어버이로 부르게 하는 시대착오적 봉건체제가 왜 정당한 것인가. 북한의 독재는 '체제수호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고, 남한의 독재는 '지도자들의 욕심'이라는 판정의 근거는 무엇인가. 만시지탄이지만 PD가 이러한 자기유폐적 사고에 갇힌 NL과 결별한 것은 건강한 진보세력 형성을 위한 새 출발이란 점에서 잘 됐다고 말하고 싶다.
아울러 초라한 모습으로 남게 된 NL파들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다. 북한에 가서 주민들의 생활상을 직접 본 다음에도 종북을 계속 하겠느냐고. 기자는 지난 2006년 2월 기획예산처 공무원들과 함께 개성공단과 개성시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동행한 통일부 관계자가 전해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북한주민이 남측에서 지원한 연탄을 부숴 황토와 혼합, 주먹 크기의 자갈탄으로 만들어 쓴다는 것이었다. 연탄이 너무 빨리 타 아깝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연탄 한장의 화력과 연소시간도 감당 못하는 그들의 궁핍이 콧날을 찡하게 했다.
독일의 공산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1951년 공산주의의 이상이 파탄 난 것을 목격한 뒤에도 다음과 같이 강변했다. "동(공산주의)과 서(자본주의)가 창녀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의 창녀는 아이를 가졌다." 그렇다면 북한 공산주의는 어떤 아이를 가졌을까?
정경훈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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