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해를 바라보는 언덕에 세워진 항구도시 에페스에 첫발을 내디뎠다. 에페스는 화려하고 부유한 도시이며 상업과 철학과 학문의 중심지였다. 에페스는 BC 6~7세기 아테네의 식민도시로 세워진 이래 헬레니즘문명의 번영을 누리며 로마 지배 아래에서는 아시아 속주의 제일가는 도시로서 번창하였다.
에페스는 기독교 성지이기도 하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고, 제우스의 딸이자 다산과 풍요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를 수호신으로 섬기는 에페스 사람들에게 바울이 기독교의 복음을 전한 곳이다. 또한 디모테가 사역한 곳이며 아시아 일곱교회 중 하나인 에페스 교회와 사도요한 기념교회가 있을 뿐 아니라 성모숭배를 결의한 3차 종교회의가 이곳에서 열렸다.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이곳 에페스의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가 바로 신약성경의 '에베소서'이다.
코린트 양식의 대리석 기둥이 줄지어 서있는 대로를 따라가면 신전과 음악당, 공중목욕탕이 나오고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들러 쇼핑을 했다는 아고라 옆에 셀수스 도서관이 있다. 셀수스 도서관은 그리스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학문 전통을 이어오는 곳으로 수 만권에 달하는 두루마리 책을 소장하고 있던 유명한 도서관이었다.
만물의 근원을 물로 규정한 탈레스와, 흙은 물이 되고 물은 다시 불로 환원된다고 설명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은 변화하는 만물의 본질을 탐구하고 세계의 이중적 구조를 밝히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 권의 두루마리 책도 남아있지 않고 강론과 열띤 토론이 오갔을 도서관 건물은 정면만 온전히 남아 인류 정신사의 위대한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셀수스 도서관은 바울이 2년 이상 머물며 제자를 교육하고 강론했던 두란노 서원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사실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유곽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양갓집 자제들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척하고는 지하로 파인 작은 굴을 이용해 유곽으로 드나들었다.
사도 요한 기념교회 아래 있는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는 아르테미스 신전을 거닐었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18m짜리 대리석 기둥이 127개나 서있던 거대한 건물이었으나 BC 356년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한 한 정신병자의 방화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대리석 기둥 한 주만 외로이 서있는 신전의 폐허를 돌아본 날, '숭례문' 방화기사를 접했다. 반복되는 어리석은 인간들의 역사에 슬프고 착잡할 뿐이다.
서영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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