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목표, 교과, 교재 정비 우선…역량 있는 교사 공급 뒤따라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하는 영어교육 개혁안에 대해 모두들 할 말이 많다. 영어가 단순한 외국어가 아니라 교육 경쟁력,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주요한 지표가 되었기 때문에 다른 어떤 국가 정책보다 더 큰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또 한편 지난 시간 동안의 공교육, 사교육을 통해서 영어교육에 상당한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어 후진국이라는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데서 오는 좌절감이 인수위의 영어교육 개혁에 더 큰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이러한 관심과 기대에 찬 논쟁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영어교육 정책을 바꾸고 그 결과를 보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우리의 관심과 기대가 자칫 '확 바꾸면' 금방 개선될 것이라는 믿음이 될까봐 걱정이 앞선다. 영어교육 정책과 제도를 개선해서 영어 잘하는 국민을 만드는 것은 경부고속도로를 닦는 일이나, 청계천을 복구하는 일과는 다소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애써 강조하고 싶어진다.
효과적인 교육을 위해서는 먼저 적정한 교육목표가 설정되어야 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교과과정이 있어야 한다. 또한 교과과정에 부합하는 교과서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교육의 목표와 교과과정을 이해하고 효율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교사다. 쏟아져나오는 영어교육 정책을 보면서 우리 영어교육은 어디에 목표를 두는지 묻고 싶어진다. 모든 사람이 이중언어 사용자가 되는 것이 우리의 영어교육 목표가 되어야 하는지? 우리가 흔히 예를 드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는 우리와 문화적, 언어적, 정서적 면에서 환경이 다르다. 이들의 교육 모델을 참고한다 하더라도 우리에 맞는 교육 목표와 교육과정을 수립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남의 교육제도를 적절히 베끼는 식으로는 우리나라의 영어교육 제도를 개선할 수 없다.
교과과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이를 이행할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영어교사가 되는 길을 다양화한다는 것은 실력 있는 교사를 공교육에 유입함으로써 교육의 질을 확보하고, 경쟁을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영어교육의 질은 물리적인 교사의 수, 교사의 영어능력에만 달려있지 않다. 교사와 학생, 교사와 교사 간의 상호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할 때 교과목 내용도 의미 있게 전달될 수 있다. 교사양성 및 재교육 체제는 긴 안목에서 수립되어야 한다. 교사의 자질을 높이기 위한 체계적이고 공정한 평가제도, 원어민과 한국인 교사 간의 협력체제, 원어민 교사 활용방안, 연수 및 추후활용계획 등의 종합적인 고려하에 교사수급 정책이 세워져야 한다. 단기간의 때우기 식의 교사활용 및 수급제도로는 근본적인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실망스럽게도 "꾸준히, 시간을 가지고 하라"는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영어 잘하는 국민이 되는 것은 단기간의 프로그램이나 반짝하는 정책이 있다고 해서 되지 않는다. 교육과정과 교사양성에 대한 꾸준하고 장기적인 연구와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효과적인 영어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어교육은 우리가 하겠다는 교사들의 의지와 노력, 그리고 영어를 자연스럽고 즐거운 배움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학습 환경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영어교육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화려한 이름의 '획기적인 정책'을 만드는 데 관심을 쏟기보다는 기본을 다시 생각하고 이에 충실한 정책이 무엇일지 생각하고 고민해 주었으면 한다.
김신혜(계명대학교 영어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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