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문화재 잃고 외양간 고치기

입력 2008-02-19 07:00:00

네팔 의료봉사활동을 다녀 온 것이 1997년도와 1998년도 두 차례였다. 첫해에는 국제이동성형외과 연맹(Interplast)의 협조로, 그 다음 해에는 친한 선후배들의 협조를 얻어 기금을 모아 다녀올 수 있었다. 의료 봉사활동의 의미는 단지 약을 주고 연고를 발라 주는 것이 아니었다. 약 열흘 동안 60~70 예의 선천성 손 기형 수술이나 화상 후 발생한 손의 구축 수술을 밤낮으로 시행하였다.

귀국 전날,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와 이곳에서 5km정도 떨어진 파탄, 그리고 박타푸르 등의 유적지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섬세하면서도 웅장한 문화재들을 보면서 건축뿐만 아니라 조각에 네팔인들의 조상인 네와르족은 재능이 뛰어났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된 파탄 왕궁의 조각품이나 사원들이 너무나 방치되어 있었다. 문화재를 지키는 경비는커녕, 사원 안에 있는 양쪽 기둥에 굵은 끈을 연결하여 아이들이 그네를 뛰고 있고, 동네 강아지는 아무런 제재 없이 사원 마루에 대소변을 보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의료 봉사 활동에 따라왔던 의과대학생에게 질문을 하였다. "이런 것이 바로 국가의 경쟁력이 아닐까 싶은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해?"

설 연휴 끝날인 지난 주말, 일본 수부외과학회의 친한 교수가 휴가를 즐기고자 서울을 처음으로 방문하였다. 비록 이른 아침이었지만 가장 먼저 남대문 시장과 대한민국 국보 1호인 숭례문을 보고 싶어 하였다. 사실 필자도 마음먹고 숭례문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남대문 시장을 구경한 뒤 일본 교수가 원하여 같이 남대문 시장 쪽에서 숭례문 방향으로 함께 사진도 찍었다. 바로 다음날, 숭례문은 어이없는 화재로 무너져버렸다.

이번 숭례문 화재는 귀중한 문화재의 훼손 차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나 성수대교 붕괴에서처럼 현재 우리 사회의 전체 시스템의 실패가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단순히 화재 현장을 높은 담으로 가리고, 200억을 들여서 2~3년 만에 현재의 기술로 21세기형 숭례문을 급조해서는 안 될 것이다.

먼저 화재의 원인에 대한 성찰이 중요하다. 국가에 대한 불만을 국보급 문화재 파괴로 해소하는 사회적 정신 병리에 대한 진단과 치료도 우선되어야 한다. 재건축에 대해서도 시한을 정해놓고 '빨리빨리' 추진할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정신을 이해하고, 우리 선조들의 숨어있는 혼과 기를 다시 재현할 수 있는 건축물이 아닌 문화재를 새롭게 창조해 내어야 할 것이다. 숭례문은 앞으로도 수천만 년을 이어가야 할 우리 대한민국의 상징이 아니든가? 외양간 고치기 정도로 보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된다.

우상현(수부외과 세부전문의·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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