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생명공학'과 열애중…이동건 경북대 교수

입력 2008-02-18 07:09:34

8년간 논문 100편·20년째 똑같은 패션·20년간 모아둔 노트

우리나라 미생물생명공학계를 대표하는 학자가 되겠다는 경북대 생명공학부 이동건 교수와 제자들.(사진 위 중간부터 시계반대 방향으로 이동건 교수, 이준영, 성우상, 박가나, 박소현 씨.)
우리나라 미생물생명공학계를 대표하는 학자가 되겠다는 경북대 생명공학부 이동건 교수와 제자들.(사진 위 중간부터 시계반대 방향으로 이동건 교수, 이준영, 성우상, 박가나, 박소현 씨.)

8년의 교직생활 동안 100편이 넘는 SCI 논문을 쓴 교수가 있다. 2003년엔 광주 조선대에서의 교수 생활을 접고 경북대로 자리를 옮긴다는 소식에 '젊은 인재를 다른 지역으로 빼앗긴다.'며 광주지역 언론들을 호들갑떨게 했던 교수다.

주인공은 최근 '장내세균과 인체의 공생의 비밀'(본지 14일자 29면 보도)을 세계 최초로 밝혀낸 논문을 세계적인 저명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은 경북대 생명공학부 이동건(42) 교수.

그의 첫인상은 무척 독특했다. 자신의 이름 영문 이니셜이 새겨진 '특수 제작'된 검정 넥타이와 와이셔츠에 멜빵 차림. 이 교수는 20년 전부터 이러한 옷만 입고 있다고 했다. 그의 연구실도 여느 교수 연구실과는 다른 풍경이다. 사방을 가득 메운 책 대신 연예인 사진과 각종 영화 캐릭터, 자동차 완구, 카페용 테이블이 대신했다.

그의 기행(奇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교수의 책상 위에는 메모지, 필기도구 등이 항상 같은 자리에 정렬돼 있다. "똑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고, 볼펜과 메모지가 항상 같은 자리에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20년 전 학생 시절에 썼던 노트도 연도별로 정리해 모아뒀지요. 제 자신이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일종의 주술 같은 습관이 지금은 강박증처럼 굳어졌어요."

이 교수는 철두철미한 정리·정돈 습관이 연구실적을 높이는 비결로 믿고 있다. "남들은 저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할지 몰라도 이런 정리·정돈 습관과 다른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까지 항상 메모하는 버릇이 논문을 쓰는데 큰 도움을 주더군요."

그 교수의 그 제자처럼, 이 교수의 지도를 받는 7명의 제자들도 점점 그를 닮아가고 있다. 최근 3년 동안 이 연구실 대학원생들은 SCI 논문 40여 편을 냈다. 특히 생명공학 분야에서 연구활동이 우수한 젊은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젊은 과학자상'을 받은 성우상(2007년 수상), 이준영(2008년 수상) 씨도 그의 제자들이다. 한 연구실에서 젊은 과학자상을 2년 연속 수상한 것도 이 교수의 기행 덕택인 셈이다.

이 교수는 제자들과 함께 연구해 괜찮은 논문을 한 편 쓰면 모든 연구실적의 공을 항상 제자들에게 돌린다. 모든 논문에는 제자의 이름이 앞선다. 제자의 논문을 자기 것인 양 빼앗고, 교수의 이름이 맨 앞자리를 차지해 이따금 학계에서 문제시되던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제 스승님께 배운 것입니다. 우리나라 미생물생명공학회를 창시한 국내 미생물학계의 대가인 서정훈 선생님이 저에게 '사회에 나가서 이름을 알린 학자가 됐을 때 나에게 갚지 말고, 네 제자들에게 갚아라.'고 했던 말을 가슴깊이 새기고 실천하고 있어요."

연구에 미쳐 여태 결혼을 못한 이 교수는 '올해 목표가 혹시 결혼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남들이 그러더군요. 저한테 걸리는 여자는 재수 옴 붙은 거라고."라며, "50세가 될 때까지 100편 정도 논문을 쓰면 학자로서의 소임은 다했다는 목표를 세웠지요. 근데 8년 앞당겼으니 앞으로는 200편으로 목표 수정을 해야 하겠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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