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설의 출발은 삶·존재에의 고민
한강의 소설은 여름햇볕처럼 강렬하지만 실제 그녀는 낮은 목소리, 고요한 낯빛을 하고 있다. 목소리가 작아 언뜻 듣기엔 자신감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귀 기울여 들어보면 그녀가 얼마나 주관이 강하며 논리적인지 알 수 있다. 좀처럼 웃을 것 같지 않은 얼굴인데 잘 웃고, 한번 웃으면 오래 웃는다. 한강은 목소리가 좀 컸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한강은 늘 바쁜 사람 같다. 서울에 간 김에 '차 한잔 함께 마실까….'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내면 '나올 수 없다.'고 답한다. 원고를 부탁해도 역시 '좀처럼 시간내기 어렵다.'고 답한다. 뭐 하느라 그렇게 바쁘냐, 고 물었더니 '늘 바쁘다고 말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데, 소설 쓰는 데 필요한 물리적 시간을 확보하느라 나도 모르게 바쁘다, 말한다.'고 했다.
소설창작은 어느 작가에게나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럼에도 모두들 친구를 만나고 술을 마시고, 집요하고 끊기 있게 논다. 한강이 유독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는 것은 천천히 오래오래 쓰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그녀의 소설은 치밀하고 거칠게 흔들어도 한 글자도 흩어질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작가나 웃어넘길 농담을 건넸다.
'그 치밀함으로 완전범죄를 저질러 돈을 버는 편이 낫지 않을까?'
'범죄는 사후정리 시간이 짧아. 그러니 소설처럼 치밀할 수 없겠지.'
한강의 소설 '내 여자의 열매'는 아파트에 사는 여자가 식물이 되고, 함께 살던 남자가 그녀를 화분에 심는다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의 변주인 '채식주의자'까지 읽어본 독자들은 '혹시 한강이 진짜 채식주의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버티는 비쩍 마른 여자와 건강을 위해 고기를 먹이고야 말겠다는 고집스런 아버지의 섬뜩한 다툼'을 보면서 말이다.
한강은 육식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채식주의자는 아니라고 했다.
그녀는 '내 여자의 열매'와 '채식주의자'를 인간이란 뭘까, 결백한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가능할까, 폭력이란 뭘까, 이해란, 소통이란, 견딘다는 것은 무엇이고 아름답고 선하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라고 했다.
작가 한강의 소설은 인간과 삶, 존재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다소 무겁고 어두워 보인다. 한강은 애써 진지해지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향이 그렇다고 했다. 명랑하고 호기심 많은 아이였는데 자라면서 조용한 성격이 됐고, 당연해 보이는 일도 쉽게 결론 내리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오래 생각하는 사람이 됐다는 것이다.
한강은 작가 한승원 선생의 딸이다. 한강은 "아버지는 평생, 날마다 일정량의 글을 써온 분이다. 글 쓰는 아버지의 고단함에 대해 얼마간의 연민과 애정과 불만을 가지고 성장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 자신 소설가가 되고 30대를 지나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한강은 "시인의 눈은 어린아이의 눈이거나 회복기 환자의 눈이어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한강이 그렇게 말했을 때, 시인의 눈과 회복기 환자의 눈에 대해 설명을 덧붙여야 겠다, 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백으로 남겨두는 게 낫겠다. 한강이 말하는 '시인의 눈과 회복기 환자의 눈'에 대해 독자들이 각자 상상해보면 좋겠다.
작가의 멋있고 독특한 이름, 한강(江)은 본명이다. 그녀는 소녀시절 평범한 이름을 갖고 싶어했다고 한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사진·ⓒ이영균(창비제공)
△ 한강은…
1970년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 1993년 '문학과 사회'에 시가,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됐다. 이상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등이 있다. 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몽고반점'은 당시 심사위원 7인의 전원일치 지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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