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병원 규칙' 앞에 무기력한 '인술'

입력 2008-02-16 07:11:23

나이팅게일의 침묵/가이도 다케루 지음/권일영 옮김/예담 펴냄

이 소설은 작가의 전작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2편에 해당한다. 1편의 사건이 연속되는 게 아니라, 1편에 등장한 인물과 배경이 상당부분 겹친다. 그래서 전작 '바티스타…'를 읽은 독자라면 더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다.

전작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은 심장 수술 중 연쇄사망사건이 발생하자, 집도의 기류 교이치가 병원 내부조사를 의뢰하면서 시작한다. 일종의 미스터리 추적방식이다. 이번 작품 '나이팅게일의 침묵'은 입원 중인 중학생 마키무라 미즈토의 아버지가 토막 살해되면서 시작된다. 경찰은 용의자 몇몇을 압축하고, 그 중 병원 내부 용의자에 대한 조사를 병원내 상담 전문의 다구치와 후생 노동성 기술관 시라토리에게 일임한다.

읽다 보면 알겠지만, 소설 속 토막 살인 사건은 독자의 시선을 묶어두는 장치에 불과하다. 전작 '바티스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에서도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의학수사 드라마보다 덜 흥미롭다. 그러나 문학작품답게 의학수사 드라마가 좀처럼 채워 넣기 힘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 가이도 다케루는 현직 의사다. 그는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병원내부의 묵은 문제, 인간에 대한 애정, 사람살이에 끼여들기 마련인 액운에 대해 이야기한다.

병원의 간호사이자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하마다 사요. 그녀는 피살자를 딱 한번, 그것도 오직 선의로 만났다. 간호사 사요가 피살자를 만난 이유는 자신이 맡은 중학생의 '수술 동의서'를 받기 위해서였다. 아들이 죽을병에 걸렸음에도 병원에 한번 찾아오지 않는 아버지, 당장 수술이 급하지만 '나는 몰라'로 일관하는 인물. 사요는 어린 환자를 살리고 싶은 마음으로 만났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유력한 용의자로 분류된다.

간호사 사요가 수술 동의서를 받으려고 애쓰는 장면은 그녀의 인간에 대한 애정에 해당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를 살인 용의자, 혹은 병원의 시스템을 어긴 조직원으로 간주한다. 이뿐만 아니다.

살인사건이 발생하기 전, 사요는 동료 간호사와 술집으로 놀러갔다. 술집에서 노래하던 여가수가 갑자기 쓰러진다.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죽을 지경이다. 사요는 구급차를 불러 여가수를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으로 옮기고자 한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병실'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한다. 사요는 약간의 편법과 월권을 동원해 환자를 입원시키고 살려낸다. 그러나 그녀는 시말서를 쓴다.

결과적으로 생명을 구했지만 그 과정에서 시스템(필드 매뉴얼)을 어겼기 때문이다. 'FM과 생명'이 늘 반목하는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FM'은 종사자의 실수나 태만을 줄이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래서 'FM'은 옳고 거기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FM'이 미처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는 언제 어디서나 발생한다. 사요는 'FM'이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고 생명을 살렸다. 그러나 'FM' 혹은 '질서'는 그녀를 처벌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살이의 딜레마인 것이다. 이 딜레마에 빠지지 않으려면 적당히 게으름뱅이가 되면 된다. 충심이,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시말서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병원 밖으로 출장을 나가서까지 '수술 동의서'를 받아 생명을 살리려던 그녀의 선의는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되는데도 한몫을 했다. 이에 반해 '병원에 온 보호자에게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은 의사의 일이지만, (보호자를) 병원에 데려오는 것까지 의사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10p-' 라며 자기 할 일, 자기 시간만 따지는 주치의 우치야마 기요이는 어떤 불운에도 휘말리지 않는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다소간의 불편 혹은 불운을 감수하고서라도 의료인의 본분을 지킬 것인가, 의료인의 역할경계를 내세워 어떤 불행과도 마주치지 않을 것인가? 꼭 의료인이 아니더라도 세상의 모든 직업에 이런 상황은 편재한다.

소설은 이외에도 매일 환자를 대하는 의료인의 고뇌와 병든 의료시스템을 곳곳에 배치해 놓았다.

'환자에 대한 지나친 감정이입은 위험하다. 공감은 중요한 것이지만 지나치면 간호를 제대로 할 수 없다.'

'소아과 진료는 맨파워를 필요로 한다. 아이는 어른과 달리 주사 하나를 놓는데도 기를 써야 할 경우가 있다. 일반 환자라면 본인과 이야기하고 끝낼 일을 소아과에서는 부모의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 자식에 대한 애정이 깊은 부모일수록 객관적인 사실을 납득시키기도 힘들다.'

이는 대학병원, 종합병원에서 소아과가 점점 사라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는 '소아과 의사가 줄어든 것은 의료행정이 소아과를 냉대한 결과다. (중략) 어린이와 의료를 경시하는 사회에 미래 따위는 없다.'고 말한다. 일본의 대학병원, 비교적 큰 종합병원에서 소아과가 경시되는 현상에 대한 비판이다.

작가가 현직 의사이기 때문일까. 죽음과 시체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은 여느 다른 작가 혹은 일반인과 확실히 다르다.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 사에코와 유키에게서 두려움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녀들에게 죽음은 자신이 타고 온 전철에서 내린 후 떠나는 전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전철은 멀어지고 두 줄기 선로가 아득해질 뿐이다. 작가 가이도 다케루가 주검을 대하는 태도 역시 여느 작가와 다르다. 소설 속 인물(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나면 읽는 재미가 줄어들 것이므로 밝히지 않는다.)이 시체를 토막내면서 하는 말, '사람이란 죽으면 물체에 지나지 않아. 그것만 이해하면 아무렇지도 않지. 살아 있을 때는 몰라도 죽으면 별것 아니야.' 이 외에도 소설에는 우리가 살면서 마주칠지 모를 다양한 인간사가 숨어 있다. 532쪽. 1만 1천 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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