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재즈와 많이 유사하다.…즉흥적(improvise)일 때가 최상이다."(조지 거슈인)
"재즈는 똑같은 악보를 두고 매일 연주하면서도 매번 다르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음악."(오넷 콜먼)
재즈는 요즘 같이 찬바람이 부는 날 듣기에 제격이다. 연한 조명이 비치는 바에 앉아 부드러운 마티니 한 잔을 마시며 빌 에반스 트리오의 '데비를 위한 왈츠'(Waltz for Debby)를 들어본다. 빌 에반스가 조카 데비와 함께 언덕에서 시간을 보낸 뒤 곡을 썼다는 배경 설명까지 곁들여지면 금상첨화이다.
대구 중구 삼덕동에는 카페 골목이 있다. 네온사인이 눈을 현혹하고, 로데오골목 클럽에서 뿜어 나오는 스피커의 괴성이 귀를 괴롭히는 길 건너와는 사뭇 다른 광경이 펼쳐지는 곳. 거기에 재즈 마니아를 위한 작은 소리공간인 클럽소공(www.clubsokong.com)도 한 자리 꿰차고 있다. '소공지기'인 재즈 드러머 김명환(37) 씨를 만난 11일 저녁 시간도 삼덕동 골목에는 낯 익고 귀에 익은 그런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인생은 재즈와 닮았다
클럽소공에서는 2006년 8월 18일 개장 이후 매주 수·금·토요일에 라이브 공연이 열렸다. 17개월새 250회의 라이브 공연이 열린 것이다. 그중 절반은 김 씨가 드러머로 연주에 참여했다.
"장사는 처음인데 그리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더군요."
명절 대목 장사가 예전 같지 않다며 김 씨가 먼저 내뱉은 말이다. 개장일이 언젠지 물어본 건데 그의 대답은 한참을 앞서갔다. "나이 들면 라이브 클럽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후배들이 있는데 하지 말라고 대답합니다." 재즈바는 음식점이 기본이고, 이에 더해서 라이브가 있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하지만 전국에서 공연차 찾아온 뮤지션들이 다들 좋아하더군요."
클럽소공의 시설에 대한 김 씨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테이블 세개 놓으면 비좁아 보일 정도의 무대이긴 해도 소공의 무대에는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 드럼 등이 설치돼 있다. "야마하 피아노가 있는 곳은 전국에서도 몇 군데 안될 걸요?" 개장을 준비하며 재즈 피아니스트인 후배와 대구 악기상을 돌아다니며 직접 연주해 보고 고른 제품이다. 돈이 부족해 중고(그래도 800만 원)를 골랐지만 2년간 애프터서비스를 통해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보물'이다.
콘트라 베이스도 직접 샀다. "연주자가 가지고 오려면 차를 몰아야 해요. 그만큼 더 피곤할 수밖에 없는데, 최고의 공연을 위해 연주자는 '몸만 오면 되는 곳'으로 클럽을 만들었지요."
대구 시내엔 '더 코너'나 '클럽댓' 같은 공간에서 재즈 라이브 연주회가 열린다. 그러나 소공처럼 자주, 정기적으로 주인이 직접 연주에 참가하지는 않는다. "처음 의도는 '1주일에 한 번 이상은 연주를 하자. 보기도 하자.'는 거였어요. 대구예대 실용음악과 학생이나 아마추어 연주자들도 공연할 수 있도록 했지요. 그렇게 해서 지역에 있는 음악인들을 알아가는 도중이에요. 서울 뮤지션들도 주 1회 이상 불러오고자 했는데, 지금은 월 1회 정도만 초청하고 있어요."
◆재즈 연주장이 꽉 차는 날을 꿈꾸며
대구의 라이브 공연 시장의 한계는 바로 소공의 애로로 이어진다. "대구는 재즈 인구 100여 명이 클럽 세 군데(소공·클럽댓·더 코너)를 돌아다니는 것 같다."고 그는 분석했다. 공연료를 많이 받거나, 기업의 후원을 받는 것이 해결책이지만 지역 문화계의 현실상 쉬운 일이 아니다. "일주일에 하루만 빼고 매일 공연하는 것이 꿈"이라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그렇게 할 만큼 밴드도 많지 않고 수요도 못 미치기 때문이란다.
예전에 가끔 들렀던 서울의 재즈바가 매일 사람들로 꽉 차는 것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 연주자들이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조금만 잘하면 서울로 가 버리는 세태에서 김 씨는 "열심히 하는 수밖엔 없다."라며 다소 교과서적인 답을 내놓았다.
밴드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클럽소공은 공연료 5천 원을 꼭 받는다. "중간에 오거나 늦게 오는 손님들은 어쩔 수 없이 안 받는 경우도 많아요.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초기에는 따지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황당한 경험도 많이 겪었다. 자신이 연극계에 있다며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따지는 사람, 술에 잔뜩 취해서는 현금이 두툼한 지갑을 내보이며 "공연이 맘에 들면 제대로 주겠다."는 중년 남성, "예술을 택하든지 장사를 택하든지 하라."며 자존심을 건드린 문화계 인사 등…. "조금씩 바꿔나가야지 않겠느냐?"는 것이 김 씨의 해법이다.
◆록 드러머에서 재즈 드러머로, 클럽 사장으로
김 씨는 "진정으로 재즈를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30% 청중을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했다. 청중이 연주에 집중하고, 이로써 연주자에게 기운을 불어 넣어 더욱 멋진 연주가 이루어지는, 교감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다.
"음악인이 운영한 공간이 살아남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나도 단기 수익을 노리고 클럽을 운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10년 혹은 20년 계속 소공을 운영했으면 합니다. 클럽소공 하면 재즈가 연상되고 이곳에서 연주한 뮤지션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으며 세계적 음악인들이 소공을 방문하는 날이 언젠가 오겠죠."
인터뷰는 칵테일 몇 잔과 청주가 곁들여지며 늦게까지 진행됐다.
"'연주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인 공연료를 재즈 애호가들이 이해해 줬으면 합니다. 더 자주 공연장을 찾고 연주에 귀 기울이며 적극적으로 감상하면 좋겠고요." 그는 자신에겐 평생 아지트이자 놀이터이자 재즈인들에겐 '사랑방'이 되는 소공을 꿈 꾸고 있었다.
그는 "솔직히 이런 인터뷰를 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했다. "내가 음악 하는 것 자체를 아버지께서 좋아하지 않고 클럽소공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계시거든요. 잘 되면 말씀 드려야지 했는데 언제 하겠어요? 하지만 10년 더 하면 뭐라도 되겠지요."
김 씨는 인터뷰 내내 '재미'라는 단어를 입에서 떼지 않았다. 10년 전 쯤 처음 본 재즈 라이브에서 즉흥연주(improvisation)의 묘미에 빠진 록밴드 드러머가 재즈 드러머로, 그리고 라이브클럽 사장으로 변신하게 한 원동력이다. "돈이 안 되면 재미라도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자조가 아니라 다짐으로 들렸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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