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의 단상]진정한 양성주광성

입력 2008-02-14 15:12:13

신문에서 접한 그의 글에는 또 다른 그가 있었습니다. 웹서핑 하듯 신문의 굵직한 헤드 라인만을 죽 훑어 내리던 어느 날, 구두닦이 아저씨의 이야기를 다룬 글 끝에서 낯익은 이름 하나를 발견합니다. 동명이인? 재빠르게 읽어 내리며 이미지를 오버랩 시켜봅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내가 아는 그는 학창시절 소위 잘 나가는 X세대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시 독일병정의 상징이던 크고 길쭉한 오토바이를 타고 교정을 종횡무진 누비던 폭주족이었습니다. 가끔씩 도서관까지 배달이라도 부탁할라치면 좌우곡예운전으로 혼을 쑥 빼놓곤 하였습니다. 미팅 주선능력도 탁월했습니다. 다양한 섭외능력과 부끄러움 없는 과감한 도전, 그는 늘 웃음과 즐거움의 원천, 밝음의 전도사였습니다.

그래서 구두닦이의 이야기를 접하고는 흐트러진 퍼즐조각들을 맞추느라 혼이 났습니다. 그리고는 쉽게'밝음 뒤에 존재하는 어두움에 대한 사랑, 말없이 실천하는 386'으로 이미지를 형상화해 버렸습니다. 그 후 오랜 세월동안 그는 그런 류의 글만 썼고, 그도 사람들도 그를 그런 사람으로 조각해 버렸습니다.

섣부른 착각이었습니다. 삶의 퍼즐에는 엉뚱한 조각이 없습니다. 꼼꼼히 정리해보면 하나하나가 참으로 기묘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학도가 문학도로 변신했다가 다시 정치학도의 길을 택했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갈팡질팡 우왕좌왕 한 것도 아닙니다. 기자와 작가를 겸하면서 세상을 후벼 파내어 펼치는 것도 좌충우돌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두닦이, 도모유키, 능소화, 7번국도, 마라토너의 흡연에는 일관된 흐름이 있습니다. 빛(光)으로의 지향입니다. 그가 소재로 선택하고 있는 어둠은 빛을 더 밝게 하기 위한 도구일 뿐 어둠 자체에 대한 사랑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빛이라고 착각하는 어둠을 해부하려는 것은 진정한 빛에 대한 갈망입니다. 법원에서 구두가 더 빛나는 이유, 침략자인 일본군인 도모유키, 여름에 피는 붉은 꽃, 땡볕 아래의 대머리 경찰, 마라톤 후 심호흡으로 쭉 빨아들인 담뱃불, 일맥상통 강렬한 빛으로 연결됩니다. 그러고 보면 매일(每日)에도 해(日)가 있습니다.

기억조각들을 끌어모아 형상화시키는 작업은 재미입니다. 몇 년 후 또 다른 몇 조각을 더 챙겨서 새로운 퍼즐놀이를 할 것입니다. 그때는 그도 함께 불러 제대로 된 퍼즐놀이를 하고 싶습니다. 학창시절 던졌던 취중농담들까지 뒤쳐 빛에 대한 그의 지향을 실토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 날을 기다리며 재미난 조각들을 만들어야겠습니다.

이정태(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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