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여행]봄나물

입력 2008-02-14 15:40:29

이른 봄이면 양지바른 곳에서 할매랑 봄나물 캤는데…

우리 집 막내 녀석은 나물을 진짜 싫어한다. 어쩌다 나물 한 오라기 밥에 섞이면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안 먹는다고 버틴다. 물론 채소도 마찬가지다. 채소류나 나물을 섭생하는 버릇들이기가 난감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나물 안 먹는다고 버티는 녀석들이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 간사한 게 사람 입맛이라더니, 이제 막 자라는 아이들의 섭생 버릇을 보면 나물 뜯으며 놀았던 놀이는 이제 찾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나물이든 채소든 없어서 못 먹었던 그 시절, 행복은 꼭 풍요에서만 오는 건 아니리라.

단비가 내렸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 잠을 깼다. 할머니가 기분 좋은 목소리로"민규야 (어릴 적 이름), 비 그치거든 할매랑 나물 뜯으러 가자" 잠결이지만 "예"하며 마른 대답을 하고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햇볕이 기가 막히게 잘 드는 귀순이네 할아버지 무덤 주변으로 갔다. 아직 겨울이라 고개를 내민 나물들이 많아 보이진 않았다.

"에이, 할매. 나물도 없네."하고 입 튀어나온 소리를 해대면 할머니는 상수리나무의 마른 잎들을 들춰내었다. 신기하게 마른 잎들 밑엔 냉이·쑥·꽃다지 같은 봄나물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우와, 이건 뭐라요? 할매?"

"그기는 씀바우라는 기다. 김치로 묵어봤제? 와, 약간 쌉쏘롬 안하더나?"

"아, 이거 쪼매 맵든데."

씀바우는 우리 동네 표준어 말이고 전국적인 표준어는 씀바귀였다.

"김치 해묵는 거는 요래 어린 거를 해묵는다. 큰 거는 약으로 씬다. 아(이)들 경기할 때나 놀랬을 때 갈아 믹이마 좋은기라. 요, 나생이(냉이)는 잘게 썰어서 죽으로 끼리가 어린 아들 이마 감기가 잘 안 걸린다. 할머니는 반 의사나 반 약사쯤 되어 보였다.

마른 갈색 잎 밑으로 물기로 젖은 시커먼 잎을 헤치면 지난 밤새 뚫고 나온 듯한 어린 싹들이 나 있었다. 그 나물 뜯는 재미에 빠지면 쪼그리고 앉은 다리가 저려 절뚝거려도 언제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 몰랐다.

언덕배기에 있는 귀순이네 할아버지 무덤에서부터 시작한 봄나물 채취는 어느새 시냇가로 옮겨 갔다. 시냇가엔 들에서 못 보던 나물들이 많이 있었다.

별나물이라고 부르는 돌나물, 달래와 같이 줄기가 긴 나물들이 많았다.

"요것도 묵어봤제? 물김치 담가 묵으마 시원하고 좋제. 요건 너그 아베처럼 약주 좋아하는 사람한테 좋은 기라." 아버지가 약주를 잡숫고 오신 날 아침엔 돌나물 물김치를 한 사발 들이키시던 생각이 났다.

해가 머리 꼭대기로 올라설 즈음, 할머니의 대바구니엔 여러 가지 나물들로 가득 찼다.

"이제, 내리가자, 나생이로 된장국 끼리주께."

벌서부터 군침이 돈다. 시큼털털한 된장국에 냉이가 들어가면 그 상큼한 맛이란... 겨우내내 먹던 지겨운 된장국이지만 냉이나 달래가 들어간 된장국은 나름대로 별미였다.

"엄마, 이건 내가 딴 기다."된장국을 입에 퍼 넣으면서 엄마 입으로 냉이, 달래를 건져서 내밀었다."아이구, 우리 민규가 효자네, 효자." 달래, 냉이 한 숟가락 내밀었다가 효자 소리까지 들은 기분 좋은 날이었다.

이렇듯 나물은 우리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곳엔 놀이가 있었고 겨울동안 맛 보지못 했던 새로운 맛이 있었다. 또 쑥버무림이나 달래전, 두릅전, 쑥개떡과 같은 여러 가지 주전부리가 있었기에 나물에 대한 기억은 싫지가 않았다.

퇴계 이황 선생이 청량산을 다녀오면서 소나무를 보고 이름 붙였다는 안동 도산면 가송리에서는'참살이'전통테마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청량산 자락을 휘감고 도는 깨끗한 강물과 기암괴석, 병풍처럼 드리운 절벽이 볼만하다.

봄에는 봄나물 캐기, 감자 심기 등 봄농사 체험이 있고 이외에 감자가루를 이용한 송편 만들기, 손두부 만들기와 같은 먹거리체험이 가능하다. 연락처는 054)830-5668

이밖에 산나물이 많이 나는 곳으로는 영양 맹동산이나 청송 주왕산에도 봄나물을 캐려는 등산객이 많다고 한다. 환경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나물을 캐는 것도 중요하다.

주말을 이용해 막내 녀석을 데리고 봄나물을 캐러 가야겠다. 봄나물을 캐보고 자신이 캔 나물로 만든 반찬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 지 궁금하다. 김경호(아이눈체험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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