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십삼 년 전일 것이다. 삼십대의 남자 환자가 엄지손가락이 절단된 채 응급실을 방문했다. 너무 으스러져 다시 붙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던 수술 방법으로 환자 본인의 엄지발가락으로 엄지손가락을 만드는 수술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열네 시간의 일차 수술과 세 차례의 재수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미세수술 중에는 가장 난이도가 높은 수술이라 실패의 가능성이 있다고 이미 설명은 했었다. 엄지손가락은 뱃살로 덮어 그나마 어느 정도의 길이는 유지되었지만 없어진 엄지발가락의 상처를 치료하면서 집도의 교수로서 아무런 위로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환자가 퇴원을 하던 날, 연구실로 환자와 보호자가 방문을 했다. 멱살이라도 잡고 발가락을 새로 만들어 내놓으라는 협박이라도 할 법한데 예상과 전혀 달랐다. 환자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채로 이렇게 말했다. "교수님, 그동안 저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지요. 저로 인해 더 공부하시고, 더 많이 수술하셔서 앞으로는 저와 같이 손을 다친 환자 수술을 더 잘하실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치 십 년 같았던 그 한 달 동안의 마음고생이 한순간에 녹아 내리면서 환자의 손을 잡고 같이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그 이후, 최신 수술 방법을 배우기 위해 외국 연수를 하게 되었고, 충분한 임상 경험으로 지금은 이 분야에서 높은 수술 성공률을 인정받게 되었다. 아마도 그날 환자에게 봉변을 당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수술 시간도 짧고, 더 편하고 응급 수술도 없는 미용 성형 수술의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모 방송국의 의학 드라마 '뉴하트'가 인기리에 방송 중이다. 외과 계열 중에서도 수련 과정이 가장 힘들어 젊은 의사들에게 외면을 당하고 있는 흉부 외과를 다루고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의사 입장에서 공감이 가는 감동적인 대사나 인상적인 장면이 많다. 그 중에는 수술 후 예상치 못한 합병증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 환자의 보호자들 앞에서 집도의 교수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 보호자들에게 진솔하게 사과를 구하는 장면이 있다. 보호자들 또한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 노력해준 교수에 대해 감사를 표시한다. 법보다 폭력적인 언어와 행동으로 책임과 보상을 먼저 따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전혀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장면일 수도 있다.
오늘도 의사로서 환자에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환자의 어려움과 고통에 대해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수술실로 들어선다.
우상현(수부외과 세부전문의·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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