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천장, 하늘로 가는 길/심혁주 지음/책세상 펴냄
천장(天葬)대 주위로 향냄새가 퍼졌다. 송백향을 피우고 쌀, 보리, 겨를 얹어 피운 짙은 연기였다. 연기와 향이 천장터를 메우자 신조(神鳥) 독수리가 하늘을 배회했다. 독수리들은 천장사들이 망자의 시신을 조각내기를 기다리고 있다.
즐궁사원의 천장사 빤줴갸초가 긴칼로 시체의 왼쪽 발뒤꿈치를 쳤다. 허공을 가르는 그의 칼은 이윽고 망자의 발목, 정강이, 허벅다리, 팔, 어깨, 목, 머리를 순서대로 쳐댔다. 빤줴갸초의 앞치마는 피로 물들었다. 그는 잘라낸 시신 덩어리를 옆에 서 있는 두 명의 보조 천장사에게 던졌다. 한 사람은 묵직한 해머를, 다른 한 사람은 날카로운 칼과 주걱처럼 생긴 연장을 들고 있다. 그들은 덩어리째 넘겨받은 육신을 부수고, 긴 장기를 잘게 잘랐다. 대화나 표정은 없다. 웃음소리나 울음소리도 없다.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죽은 지 나흘째, 해부된 육신의 냄새는 역겹다. 그러나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은 없다. 망자와 유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천장사가 독수리들에게 먹어도 좋다고 손짓한다. 독수리들은 뒤뚱뒤뚱 달려들어 게걸스럽게 시체를 먹어치운다. 많을 때는 200마리가 넘는다. 독수리들이 시체를 먹는 동안 천장사 빤제갸초는 시체의 머리를 망치로 두들긴다. 독수리들은 뇌수까지 먹어치울 것이다.(책에 나타난 천장과정 요약 재구성)
천장사들은 시체를 가능한 작게 부순다. 독수리들이 먹고 남은 찌꺼기는 까마귀들이 먹을 것이다. 새들이 망자의 육신을 깨끗이 먹을수록 망자의 가족들은 기뻐한다. 죽은 자의 영혼이 더 좋은 곳에서 환생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천장사는 단순히 육체노동자가 아니다. 그들은 육체와 영혼을 분리작업을 통해 오체투지(五體投地) 이상의 육신보시라는 수양을 행하고 있다. 그들의 행위는 수양 과정이며 수양의 깊이와 도덕성이 뛰어날수록 신뢰를 받는다. 천장사는 천장대, 공행모(空行母-독수리)와 더불어 천장의 세 가지 요소다.
원시적으로 보이는 천장은 티베트의 과거와 현재, 해발 4천m가 넘는 티베트 고원의 척박함, 토착종교인 본교와 불교의 정신문화가 어우러진 문화다. 목재가 부족해 연료로 야크 분비물을 써야 하는 곳, 이들에게 겨울날 매장을 위해, 땅을 녹이기 위해 불을 피울 목재는 없다.
티베트 사람들은 사람의 호흡이 끊어지면 일정한 시간내에 주술사가 시체에서 영혼을 분리해 살아있는 다른 생명체로 올바로 '전송'해야 한다고 믿는다. 육체는 죽으나 영혼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천장은 이 불멸의 영혼의식에서 비롯됐다.
티베트에서 토장(매장)은 가장 형편없는 장례법이다. 매장은 전염병에 걸려 죽은 사람이나 살인범에 한했다. 매장되면 사후에 다시 태어나지 못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물론 간쯔 티베트 자치구와 아바 티베트 자치구 등 일부 지역에서는 매장을 선호한다. 그러나 이 지역 사람들과 대부분 티베트 사람들의 매장에 대한 인식은 다르다.
천 년을 이어온 티베트의 천장은 1950년 중국 침공 후 이어진 통제와 1980년대부터 불어온 현대화로 퇴색하고 있다. 휴대폰, 영어열풍이 불고, 천장은 간편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는 추세다. 요즘은 화장과 시체를 드럼통에 넣어 태우는 전장(電葬)이 나타나고 있다.
티베트의 천장이 이어지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전통이 이어지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 속에는 중국과 티베트의 화해, 현대와 전통의 악수라는 함의가 있다. 천장은 그러나 세월을 따라 이 세상에 왔듯 세월을 따라 사라질 것이다. 누가 시간의 창조력과 파괴력을 이겨낼 것인가. 244쪽, 1만 2천 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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