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결혼 서약

입력 2008-01-28 11:20:24

지난 2003년, 할리우드의 섹시 아이콘 제니퍼 로페즈와 벤 애플렉의 약혼 소식은 세계적인 커플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지구촌의 화젯거리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식은 불과 사흘 전에 전격 연기됐고 결국 없었던 일로 끝나버렸다. 제니퍼가 내건 여섯 가지의 '기발한' 결혼 서약이 발단이 됐다. 내용인즉 '섹스는 최하 주 4회, 아이는 제니퍼가 원하는 대로, 바람 피울 경우 벌금 500만 달러, 고의적인 거짓말엔 벌금 100만 달러, 정사신 촬영시 배우자의 현장 동행, 애정 전선에 이상이 있을 경우 값비싼 선물 주고 받기.'

두 번의 결혼 실패에 대한 아픔 탓이었을까, 제니퍼가 제시한 결혼 서약은 누구라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할 만큼 엉뚱스러운 것이었다. 둘의 결별은 벤 애플렉의 복잡한 여성 편력 때문이라지만 벤이 이 서약에 동의하는 것을 몹시 부담스러워했다는 것도 큰 원인이 됐다는 후문이다.

어제 대구에서 세칭 '매니페스토 결혼식'이 열렸다 하여 화제다. 대학 동아리에서 만나 5년간 연애끝에 결혼에 골인한 장인수-이은영 씨 커플은 구태의연한 결혼 서약 대신 각자 여섯 가지 구체적인 결혼 공약을 하객들 앞에서 밝혔다. 신랑은 신부에게 이렇게 맹세했다. '비자금 만들지 않기, 집안 잡일 책임지기, 매달 부부 함께 문화생활 즐기기, 매년 첫눈 오는날 꽃다발 바치기, 다른 여성에게 눈길 주지 않기, 매달 사랑의 편지 쓰기.' 신부는 신랑에게 '아침밥 꼭 챙겨주기,양가 부모에게 매주 안부 전화하기, 꾸준한 운동, 재테크에 관심 갖기, 남편에게 상처주는 농담이나 행동 하지 않기,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겠다'고 약속했다.

묘하게도 제니퍼-벤의 그것처럼 여섯 가지 결혼 서약이지만 질적으로는 완전히 다르다. 할리우드 커플의 서약은 한쪽의 일방적인 조건 제시인데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모든 것을 돈으로만 해결하려 든다. 작은 파도에도 휩쓸려갈 '모래 위의 집'일 수밖에 없다. 반면 장-이 커플의 서약은 쌍방향이다. 인생길의 동반자에 대한 애정과 배려, 책임감이 따뜻하게 배어있다. 신세대답게 톡톡 튀는 사고방식과 애교스러움도 우리를 미소짓게 만든다. 틀에 박힌 결혼 서약을 앵무새처럼 답습하는 풍토에서 이들의 진솔한 결혼 서약이 솔바람처럼 신선하게 와닿는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