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나를 지탱해준 친구들 목소리

입력 2008-01-26 07:14:50

대구를 떠나 영주로 이사 온 지 2년 반이 되었습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이곳에서 눈물나게 외롭고 우울할 때, 하루가 길게만 느껴질 때,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전화선 너머로 들리는 대구 초록나라 친구들의 목소리입니다. 한 라인에서 4층, 8층, 13층, 17층에 살면서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한 명씩 있고, 신랑들의 퇴근시간이 극히 늦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청소를 마치면 "커피 한 잔 줘요."라며 이 집 저 집에서 만남이 시작되었고, 우리들끼리 언니 동생 할 무렵. 그날 아침도 청소를 마치고 모였습니다.

"있제∼자기 신랑 왜 그러는데?" "언니야, 왜?" "신랑이 아무 말 안 했나봐? 아니, 열두 시가 넘은 시간에 남의 집에 와서 술상 차리라는 사람이 어디 있노?"

그날도 저녁 늦게 퇴근하던 13층 오빠랑 우리 신랑이 아파트 현관에서 만났고, 패밀리 마트로 자리 옮겼다가 나이 동갑이라며 바로 친구 하기로 했고 급기야 마눌님(나) 성격 까칠하니 13층 언니 네로 가서 친구 된 축하 파티를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저씨들 한 사람 두 사람 합세하게 되고 마지막으로 제일 큰오빠는 우리 신랑의 끈질긴 구애작전에 지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푼푼이 모은 돈으로 제주도를 다녀왔고 영주 옥녀봉휴양림, 예천 학가산 휴양림, 그리고 몇 주 전엔 경주 감포도 느긋하게 둘러보았습니다.

살아가면서 이런 만남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나에겐 축복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언니도 동생들도, 오빠들도 거기다 이모라 불러주는 반짝이는 아이들까지 말입니다.

친형제간보다 더 자주 만나고 더 이해해주는 이 사람들이 있어서 내 삶이 든든하고 행복합니다. 비록 사는 곳은 떨어져 있지만 변함없는 그 마음이 고마울 뿐입니다.

올해도 모두 건강하게 무사히 지내길 소망합니다. 이들은 모두 나의 형제, 나의 보물들입니다.

홍애련(경북 영주시 영주 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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