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원수는 패전한 일본의 점령군사령관을 6년간 지내면서 헌법을 비롯해 군국주의 시대의 틀을 대대적으로 고쳤다. 그러나 관료주의-행정조직만은 예외였다. 일찍부터 일본은 관료주의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관료조직의 뿌리와 힘은 막강했다.
관료주의의 핵심은 예산과 금융 등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대장성. 일본의 자민당은 선거 때마다 공룡과 같은 관료조직을 손보겠다고 다짐했으나 실제는 손도 대지 못했다.
1981년 스즈키(鈴木) 총리는 게이단렌(經團連) 회장을 지낸 팔순의 저명한 전문 경영인인 도코 도시오(土光敏夫)를 위원장으로 하는 행정개혁심의위원회에 전권을 주고 '마음대로 고쳐달라'고 했으나 철도·전신·전매사업을 민영화시키는 것으로 그쳤다.
하지만 1990년대 일본이 거품경제로 중병을 앓고 대장성 관료들의 수뢰사건으로 여론이 분노하자 1996년 발족한 하시모토(橋木) 내각은 대장성의 해체를 골자로 하는 행정개혁에 착수, 1府(부) 23개 省廳(성청)을 1부 13개 성청으로 크게 축소하는 수술을 단행해 국민의 박수를 받았다.
1950년대 이래 구미 각국에서 제기된 '작은 정부안'을 실천한 인물은 1980년대 초 M. 대처 총리와 R. 레이건 대통령이었다. 영국은 노동당 정부 집권 후 정부의 비대화와 조세증가, 과도한 복지재정, 노사분규 등으로 진통 끝에 1976년에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요청할 정도로 경제가 주저앉았다. 대처총리는 영국病(병) 치유를 위한 新(신)자유주의론과 신공공관리론에 의거한 작은 정부를 실천해 영국을 구한 것이다.
대선 때 작은 정부를 공약했던 레이건은 취임 후 루스벨트의 뉴딜정책 이래 정부가 모든 것을 관리 간섭하는 大(대)연방주의의 탈피를 선언했다. 그 대신 감세와 규제완화, 민영화, 복지재정의 축소 등으로 작은정부를 단행했고 이러한 방침은 부시-클린턴-현 부시 대통령이 계승해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역대정부들이 작은 정부를 내세우며 정부조직의 재편을 비롯, 규제완화와 공기업 민영화, 기금개혁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의 다 실패했다. 작은 정부의 취지는 적은 비용과 인력으로 국정을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운영하며 국민에게 高品質(고품질)의 행정을 서비스하기 위함이다.
노무현 정권은 참으로 별난 정권, 특이한 정부였다. 작은 정부에 대한 생각은 애당초 생각지 않았던 것 같다. 국정을 원활하게 이끌고 일을 잘하기 위해서라면 조직과 자리, 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논리였다. 결과는 부총리· 장관·차관 등 고위 공직자들의 증원, 공무원 수 대폭 늘리기, 조직확대, 각종위원회의 量産(양산)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난 5년 동안 정부조직을 확대시키고 공무원 수를 많이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와 민생·교육·안보· 과학 등에 있어 국정의 성과가 어떠했는가를 감안한다면 어이가 없다. 기구의 신설 확장과 인력의 증원은 곧 국민의 세부담인데 과연 국민을 생각하고 한 처사인가. 도대체 생산성과 효율성은 어디 가고 갖가지 失政(실정)으로 국민의 불만과 개탄만 남았는가.
대통령직인수위가 지난주 현 18부 4처에서 13부 2처로 대폭 축소하는 새 정부 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통일·정통·해양·과기·여성 등 5개 부처를 폐지한, 역대 개편안 중 가장 큰 수술을 한 개편안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앞서 "시대흐름에 맞지 않는 정부조직의 군살을 빼야 한다" "통합과 융합은 시대적인 대세다"라고 강조한 '알뜰하고 유능한 정부론'을 반영한 것이다. 그가 제기한 경제 살리기와 민생보장, 그리고 선진화를 위한 국정조직의 틀인 것이다.
물론 이 개편안이 최선의 것이고 또 틀만 만든다고 성공할 수는 없다. 아무리 훌륭한 조직 안이라도 운영의 획기적인 내용과 방법, 정성과 노력이 반드시 따라야만 한다. 이 개편안이 완성되고 또 성공하기 위해서는 비상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축소 조정된 조직과 인력을 내실 있고 실효성 있게 운영할 수 있는 혼과 정신,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과학적인 실행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당연히 민영화와 규제개혁·지방분권화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이명박 당선인의 리더십과 새 정부의 집권능력을 테스트할 것이다.
이성춘(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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