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서도 보험 판매 허용?…보험설계사들 '긴장'

입력 2008-01-17 09:28:46

▲ 전국적으로 30여만 명, 대구·경북지역도 3만여 명이 넘을 것으로 보이는 보험설계사들이 큰 걱정에 잠겨 있다. 오는 4월부터 모든 보험을 은행이 팔 수 있도록 하는 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사진은 교보생명 대구본부에서 근무중인 보험설계사들.
▲ 전국적으로 30여만 명, 대구·경북지역도 3만여 명이 넘을 것으로 보이는 보험설계사들이 큰 걱정에 잠겨 있다. 오는 4월부터 모든 보험을 은행이 팔 수 있도록 하는 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사진은 교보생명 대구본부에서 근무중인 보험설계사들.

#봉급생활자인 남편 월급만으로는 도저히 아이들 사교육비 감당이 안돼 7년전 보험설계사로 나섰던 이명숙(44) 씨. 그는 그동안의 노력을 밑거름삼아 이제는 월평균 300만 원 이상을 벌어들인다.

하지만 그는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오는 4월부터 보험설계사들이 전담해 팔아오던 보험상품을 은행에서 판매할 수 있는 법이 시행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되면 아이들 학비를 더 이상 보탤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이 씨는 하고 있다.

#학원사업을 접고 4년전 보험영업에 뛰어든 임형태(42) 씨. 네식구의 가장인 그에게 보험영업은 생계가 달린 '밥줄'이다. 밤낮없이 뛰어다닌 덕분에 4년이 채 안돼 월평균 400만 원 가까이 벌고 있다는 임 씨. 그 역시 보험설계사 자리가 위태로울까봐 잠을 못 이룬다.

대구·경북지역에만 최소 3만 여명, 전국적으로 30여만 명에 이르는 보험설계사들이 큰 시름에 잠겨 있다. 이른바 '4단계 방카슈랑스' 도입을 통해 자동차보험과 종신보험·치명적질병(CI)보험 등 보험설계사들이 사실상 전담해왔던 보험을 은행이 팔 수 있도록하는 법안 시행 시기가 오는 4월로 다가온 것이다. 이렇게되면 보험설계사들은 설 곳을 잃는다는 것이 설계사들의 한목소리다.

보험회사들도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의 밥그릇을 뺏어선 안된다."며 '관련법 시행 절대 반대'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은행권은 "보험소비자들이 더 싼 가입비를 통해 보험가입을 할 수 있다."며 원래 시행일정대로 가야한다는 입장이다.

◆"일자리 상실은 안된다"

방카슈랑스란 은행을 통해 보험상품을 판매하도록 하는 제도. 2003년 일부 저축성 보험에 대해 허용된 이래 계속 확대돼왔다. 오는 4월엔 자동차보험과 종신보험·치명적질병(CI)보험 등을 허용하는 마지막 4단계가 시행된다. 이렇게되면 은행에서 모든 보험상품을 팔 수 있다.

보험업계는 '4단계 방카'가 시행되면 적어도 30만 명 이상인 보험설계사 중 절반 이상이 실직할 것이라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3만여 명 보험설계사 중에도 최소 1만 5천 명 이상은 '밥그릇을 놓게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호주의 경우, 방카슈랑스 시행 4년만에 보험설계사 숫자가 14만 명에서 4만 5천 명으로 68%나 줄었다고 보험업계는 지적했다.

임형태 씨는 "고용보험 등 4대 사회보험혜택 대상도 안돼 그야말로 사회안전보장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는 보험설계사들을 한꺼번에 실직 사태로 빠트리는 것은 큰 혼란을 부를 것"이라고 했다.

보험업계는 '4단계 방카'가 실직 사태 뿐만 아니라 보험 가입자들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생보업계 한 관계자는 "예금·대출에다 외환·카드 등 엄청나게 많은 금융상품을 취급하는 은행에서 보험영역 깊숙히까지 업무를 확대한다면 불완전판매가 일어날 수 밖에 없다."며 "특히 통계를 볼 때 방카슈랑스 제도가 도입된 이후 보험료 인하효과는 극히 미미해 실질적으로 보험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거의 없다."고 했다.

이태운 동부화재 대구영업본부장도 "자동차사고가 나면 피해보상상담·사고처리, 고장이 났을 때 긴급출동 등 우리 차보험은 외국과 달리 무한보상의 성격을 띄기 때문에 보험사와 가입자의 밀접한 접촉은 필수적"이라며 "우리의 특수한 상황을 모른채 차보험 판매채널을 은행으로 가져간다는 것은 소비자들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것이며 결국 소비자의 이익을 은행이 가로채가는 것"이라고 했다.

◆은행 입장과 향후 전망

은행권은 방카슈랑스 제도 도입으로 소비자와 보험사, 은행이 모두 이익을 얻는 트리플 윈(Triple Win)이 달성됐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소비자 보험료가 지난 2003년 8월 방카슈랑스 판매채널 도입후 5% 내렸으며, 보험사 자산규모도 같은 기간중 은행권 평균(7.6%)을 웃도는 12.6%나 성장했다는 것. 은행의 방카슈랑스 판매수수료도 꾸준히 늘고 있어 3개 주체가 모두 이익을 얻었다고 은행연합회는 설명했다.

은행권은 또 ▷미국과 유럽 등 대부분의 OECD 가입국가에서는 은행의 보험판매가 일반적이고 ▷은행들의 대출영업 경쟁이 치열해 꺾기 등이 불가능하며 ▷은행의 방카슈랑스 판매인력이 각종 자격증을 소지해 보험설계사보다 전문성이 뛰어나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각종 전산시스템이 잘돼있어 전산조회를 통해 어떤 보험상품이 최적의 것인지 단번에 조회가 되는데 '은행에서 팔면 무조건 제대로된 상품을 팔 수 없다'는 보험사의 논리에 동의할 수 없다."며 "4월부터의 방카슈랑스 확대는 예정대로 시행돼야한다."고 했다.

한편 지역의 안택수(한나라당)의원과 신학용(대통합민주신당)의원은 각각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 이 법안에 4단계 방카슈랑스 도입 전면 백지화를 담아놨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16일 서울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대규모 실직사태를 우려한듯 "오는 28일로 예정된 임시국회에 당론으로 보험업법 개정안을 제출, 방카슈랑스 4단계가 이행되지 않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일단 방카슈랑스 4단계 시행 유보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