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영남정서'를 벗어나야 하는 이유

입력 2008-01-14 07:00:00

지난 대선에서 영남지역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70% 전후의 표를 몰아주어 그가 과반수에 가까운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득표율까지 합하면 80%에 달하여 영남은 보수표의 곡창지대가 되었다.

'영남정서'가 그 바탕에 깔려있다고도 하고, 그런 결과로 보아 '영남정서'가 무엇인지 확연해졌다고 하기도 한다. 정서가 이렇게 선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다니, 인간이 정치의 도구가 아니라 감정을 가진 개인이라고 믿는 사람에게는 즐거운 충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지역의 집단정서가 한쪽 방향으로 크게 기울어있는 현상 자체가 올바른가 여부는 또 다른 문제다. 이번 선거가 '영남정서'의 승리라고 환호하기에 앞서 과연 이 정서가 지역을 위해서나 민주주의를 위해서 바람직한 것인지 이제는 차분히 물어볼 때가 아닌가 한다.

민주사회에서 정치적 견해는 각 개인마다 다를 수 있고 또 그것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다. 민주주의의 제도적인 우월함은 다수가 지배하는 체제면서도 소수의 견해와 권익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진보든 보수든, 서로 대화하고 타협할 여지는 여기서 생긴다. 그러나 정서의 영역이 지나치게 끼어들면 이 같은 민주적인 원칙 자체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 너와 내가 견해가 다르다면 토론을 통해서 서로 이해하고 조정도 할 수 있지만, 너와 내가 정서부터가 달라서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우리끼리'라는 명분으로 지배적인 '정서'를 강요하는 곳에서 여기에 선뜻 동참할 수 없는 소수의 처지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학생과 다를 바 없다. 때로는 권력이나 이념보다 정서란 것이 더 심한 폭력이 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집단정서를 반성적으로 사고해야 할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로 '영남정서'는 타고난 심성이나 저절로 생겨난 감정이 아니라 특정한 정치적인 목적과 결부되어 부추겨지고 구성된 정서라는 점이다. 물론 흔히 그러듯이 이를 지역감정이라고만 몰아칠 생각은 없다. 지역현실에서 겪고 있는 생활난이나 박탈감을 벗어나고자 하는 일반 민중의 욕구나 소망이 담겨 있기에 여기에는 그 나름의 진정성이 있다.

민주주의도 결국 각 지역 현장의 실감을 떠나서는 제대로 실현될 수 없을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영남정서'도 거짓감정이라고 할 수는 없고, 이 정서에 담긴 민의의 참뜻을 새기는 일이 중요할 터이다. 그러나 이 자연스런 욕구와 정당한 지역사랑이 '호남정권'에 대한 적대감과 결부되어 나쁜 뜻에서의 지역감정과 뒤섞여버리게 된 역사를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민주주의는 각 개인의 이성이나 양식이 발휘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되는 체제다. 이성이나 양식과는 무관하게 다수를 감정에 휩쓸리게 만드는 집단정서는 민주사회의 요건에 역행한다.

마지막으로 이 집단정서가 특히 보수적인 정치이념과 과도하게 결합되어 있는 현상이 지역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짚어야겠다. 급격한 변화에 반대하는 보수이념은 사회의 안정에 기여하고 전통적인 가치를 지키는 미덕이 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변화의 소용돌이를 벗어날 수 없는 현대사회에서 변화에 미온적인 사고만으로는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 보수이념도 변화에 적극 대응하려는 사회동력과 긴장관계에 놓일 때 비로소 건강성을 얻게 된다. 일방적인 보수성은 일방적인 진보성만큼이나 지역의 바람직한 발전에 지장을 초래한다.

바야흐로 세계는 다양성을 지향하고 다문화에 열려가고 있는데, 영남지역만 자기 정서를 고집하고 있다면 앞날은 어둡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영남정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때, 친숙한 것에 대한 자연스런 애호는 이 지역을 더욱더 침체의 구렁에 빠지게 하는 악몽이 될 것이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영남정서'가 새 정권의 탄생에 크게 기여하였으니 그것으로 정당성을 확보한 것이 아닌가 하고.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 정권이 제대로 민의를 반영하는지 두 눈 부릅뜨고 냉정하게 지켜보아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또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호남정서'란 것도 엄연히 존재하는데 '영남정서'를 버릴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그러나 이 다람쥐 쳇바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승자'가 끊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끊을 것인가?

윤지관(한국문학번역원장·덕성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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