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작은 딸은 '인간 리모컨'

입력 2008-01-12 07:47:58

언제부터인가 집 TV리모컨이 고장나 리모컨의 역할을 '인간 리모컨' 우리 둘째 딸의 몫이 되었다. 집에만 들어오면 아이들이고 신랑이고 TV리모컨을 돌리며 자기 입맛에 맞는 채널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것이 보기 싫어 짐짓 TV리모컨이 고장난 것을 알면서도 대책을 세우지 않고 모른 척했었다. 근데 요즘 '인간 리모컨' 역할을 곧잘 하던 둘째 딸이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왜 나만 시켜? 언니는 안 시키고?" 또한 채널로 인한 실랑이가 끊이질 않는다. 만화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투니버스를 보겠다고 고집하는 아이들과 K-1, 프로레슬링을 보겠다는 신랑과의 실랑이를 보고 있으면 우리 집에 큰아들 하나와 딸 둘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유난히 레슬링을 좋아하는 신랑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즐겨봐 왔다. 그래서 그런지 둘째는 늘 아빠와 레슬링을 하려고 덤비는 데다 대화를 듣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난다. "아빠, 칼리토는 왜 사과를 뱉어 더럽게, 부커티는 머리가 왜 저래, 트레시는 예쁜데 모델 하지 왜 레슬링 해." 하루는 친정엄마에게 전화로 할 얘기가 있어 한참을 통화하는데 수화기 속에서 우리 집과 똑같은 환호 소리가 들렸다. "엄마 레슬링 틀어놨어?" 또 한 가지 웃을 수밖에 없는 일은 사위와 장모가 나란히 앉아서 어제 본 레슬링 경기에 대해 토론하며 레슬링 경기를 감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집엔 TV에 대한 두 가지 규칙이 생겼다. 하나는 밥 먹을 때는 반드시 TV를 끈다. 두 번째는 밤 9시 이후에 TV시청을 안 한다. 그 덕분에 나 또한 뉴스도 드라마도 볼 수 없어졌지만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

TV채널 전쟁은 어느 정도의 양보와 조정이 있어야 가정에 평화가 유지되지 않을까.

박수진(대구시 수성구 지산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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