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국민 속 보는 政治

입력 2008-01-10 11:02:50

맹자가 산동현에 낙향해 말년을 보낼 때다. 이웃한 등나라의 문공이 맹자를 초대해 나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묻자 맹자는 '有恒産(유항산)이면 有恒心(유항심)'이라고 답했다. 먹을 것이 있어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는 의미로 정치에 있어 백성의 의식주를 만족하게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물론 맹자는 왕도정치의 요체를 이 같은 문자로 풀어냈지만 예나 지금이나 민생안정은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백성이 굶주린다면 도덕이고 뭐고 소용없다지 않은가.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당선 요인을 꼽으라면 '경제 살리기'가 첫손에 꼽힌다. 참여정부에 대한 반감도 있었겠지만 수구꼴통, 부패정당으로 손가락질받던 한나라당의 후보가 500만이 넘는 큰 표 차이로 이긴 것은 항산항심이 작용한 때문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국민들이 빵의 가치만 보고 몰표를 던졌다고 단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일부에서는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넘보는 국가라면 빵의 표면적 가치가 아니라 빵이 가진 상징성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빵으로 표출된 민심 이반에는 보편적 정서를 무시하고 국민을 한 방향으로만 몰아붙이려 했던 정권에 대한 심판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국민의 말귀를 못 알아듣는 정권을 붕어빵틀 철컥 뒤집듯 갈아버린 것이다.

유권자의 변심은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치열한 대선 경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에서는 민주당의 오바마 후보가 뜨고 있다고 한다. 미국 언론과 정치권은 오바마 열풍의 원인을 유권자들의 '변화' 심리에서 찾고 있다. 지난 7년간 공화당 부시 정권의 실정은 명백하다. 대다수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네오콘이 활개치면서 이라크전 등 무리한 정책으로 일관하다 국제사회는 물론 민심의 역풍을 맞은 것이다. 이처럼 격이 떨어지는 일방주의 외교, 일방통행식 정치를 하다 보니 많은 미국인들은 경험이 일천하고 정책도 모호한 오바마에게서 변화의 상징성을 찾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대통령부터 멋대로 말하고 해서 지금 한국이 힘든 나라가 됐다"고 쓴소리를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로 말을 아끼고 조심해야 하는데도 권력자부터 그러하지를 못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필시 자기 말을 아끼면 상대 속을 더 살피게 되어 있는데도 제 말만 하다 보니 나라가 총체적으로 곤궁해진 것이다. 정 총장은 한국의 민주주의에는 남에 대한 배려가 빠져 있다며 국격을 높이는 일이 한국의 과제라고까지 말했다. 듣기에 아주 단순한 지적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처럼 무겁게 들리는 충고도 없다.

현실 정치는 후대의 역사적 평가와는 별개의 문제다. 해럴드트리뷴 칼럼의 주장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언젠가 존경이 뒤따른다고 할지라도 동시대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느끼는 현실 정치에서 예와 덕이 결여됐다면 욕을 먹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노무현 대통령을 '무능하고 무례하고 심지어 고약하다'고 비난할 필요는 없다. 인물에 대한 평판은 역사의 몫이다. 국민들은 단지 정치를 심판하면 그뿐이다.

정치판이든 경제든, 스포츠든 오로지 승부(빵)에만 감동하고 환호하는 사람은 없다. 상대를 배려하는 정신에 심정적으로 더 기우는 법이다. 그래야만 대중이 그 판과 교감할 수 있고 흥행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논어는 '백성을 움직이는 데 정의로써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 예로써 하면 백성은 염치를 알고 마음으로부터 바르게 된다(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고 했다.

새 정부는 과거 정권처럼 권력이나 자기 가치만으로 국민을 움직이려 하지 말고 국민 스스로 격을 갖추고 국가도 품격이 높아지도록 共感政治(공감정치)를 해야 한다. 여론이 절대선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지향점은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민심이 어느 쪽으로 엎어질지 모르는 곧추선 동전과 같다는 점을 최소한 5년간만이라도 명심하길 바란다.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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