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암담한 현실을 마주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우리 장한 딸, 벌써 어엿한 숙녀가 다 됐구나. 엄만 그런 네가 참으로 대견스럽단다. 비록 친구들보다 성장이 늦지만, 태생적으로 학업을 잘 해낼 수 없지만 그래도 엄마는 세상 누구보다 네가 자랑스럽구나. 서영아, 엄만 참으로 미안했단다. 뱃속에 품은 널 세상 밖으로 내보내지 못해 만신창이로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핏덩이인 널 차마 마주할 수 없었단다. 이 못난 엄마를 용서해 주겠니. 난산(難産)으로 척수에 물이 차면서 생긴 염증이 뇌로 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차라리 이 못난 어미에게 몹쓸병을 달라고 빌었단다. 그래 어쩌면 엄만 한 생명을 잉태할 자격도 없는 사람인지도 몰라. 그런데도 넌 강인하게 15년이란 세월을 든든히 엄마 곁을 지켜주었구나. 널 보면 '엄마'라는 자리가 부끄럽고 한편으로 고맙단다. 서영아, 네게 사랑을 베풀 수 있도록 조금만 더 기다려 주겠니. 매번 찾아오는 고통을 함께 느낄 수는 없지만 엄만 널 포기할 수가 없구나. 서영아,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엄마 곁에서 네 숨소리를 들려주겠니. 사랑한다. 서영아. --못난 엄마가--
서영(가명·15·여)이는 뇌수두증이란 희귀병을 앓고 있다. 출생 당시 난산으로 생긴 척추 수막염이 뇌로 전이돼 물이 차는 뇌수두증이란 병을 얻게 됐다. 뇌와 장을 연결하는 물관을 삽입해 뇌속에 차는 물을 빼내고 있는 서영이는 다른 아이처럼 마음껏 뛰어놀 수도, 공부를 할 수도 없다. 더욱이 뇌에 삽입된 물관은 자주 뇌신경을 건드린다. 뇌압이 오를 때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서영이는 침대에 고꾸라져 잠들어 버리기 일쑤다. 장에 연결된 물관은 얼마 전부터 서영이의 배변기능까지 마비시켰다. 하지만 서영이는 기저귀를 차면서도 꿋꿋이 학교 생활을 해내고 있다.
안타깝게 딸을 지켜보는 엄마 송은미(39) 씨는 미어지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위태로운 생을 이어가고 있다. 서영이를 할퀸 병마는 은미 씨에게까지 갑작스레 찾아왔다. 서영이가 7세 되던 해 은미 씨마저 교통사고로 골반뼈가 괴사하기 시작했다. 서영이 병원비를 벌기 위해 종일 밤과 마늘을 까는 부업을 했던 그녀는 골반뼈가 썩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무렵 남편마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면서 그녀는 더이상 서영이의 수족이 될 수 없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서영이를 업고 학교에 간 것이 딸을 위한 엄마의 마지막 배려가 돼 버렸다. 그녀의 남편(40) 역시 혼란스러웠다. 갑작스레 찾아온 아내의 병마. 두 다리를 잃어가는 딸과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은 세상을 원망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후 벌금을 내지 않아 전과자가 됐고 그 후 공사판 막노동 외에 어떠한 일도 할 수 없게 됐다.
무서운 소용돌이가 휩쓸고 간 은미 씨의 가족에겐 최근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신장 기능이 약해진 서영이에게 신부전증 증세까지 나타나고 있다. 물관 때문에 성장속도가 일정치 않은 탓에 신장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장기들이 하나 둘씩 고장나 버리네요. 그래도 우리 서영이 잘 견뎌낼 수 있겠죠. 지금처럼 잘 해낼 수 있겠죠." 그렁그렁한 눈물이 맺힌 채 되묻는 은미 씨에게 취재 기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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