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가는지, 새해가 오는지 모른 채 정신 없이 지내고 있던 날들이었다. 아이들과 바쁘게 지내다 보면 시간 개념이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 자위하면서 말이다. 여러 단체들에서 보내오는 쓸데없는 스팸 문자들만이 신년에 대한 감흥을 잠시 일깨울 뿐이었다. 2008년 0시가 지나자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는 수신음이 들렸다. 잠결이어서 짜증이 났다. '또 어느 식당에서 보낸 거야.' 투덜거리며 문자를 확인했다. '지은아, 잘 지냈어? 오랜만이지? 올 한 해 복 많이 받고 좋은 일만 생기길 바래. 미안했어. 지선이가.'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학교를 빠져나가 함께 떡볶이를 먹으며 키득거리기도 했고 고민이 있으면 같이 밤새워 수다를 떨었던 친구. 가장 친한 친구였던 지선이의 이름이 머리 속에서 희미해진 지 오래였다. 10년 전, 대학생이던 친구 지선이가 한번은 '집안에 일이 있다.' 또 한번은 '갑자기 다쳤다.'고 말하며 내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한두 번 빌려줬지만 그것이 대학생과 직장인들 사이에 문제가 된 '피라미드' 때문이란 소문을 듣고 너무나 기막혔다. 나는 친구에게 화를 냈고 지선이는 채 변명도 하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그게 아마도 10년 전쯤 되었으리라.
늦은 시간이었지만 당장 전화해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지선이의 목소리도 여전했다. 나는 비로소 설렘을 느꼈다. 2008년은 비로소 내게 설렘으로 다가왔고 나는 다음 주에 지선이를 10년 만에 만나기로 했다. 새해 문자메시지 한 통이 내게 이렇게 큰 선물을 주어 감사하다.
김지은(대구 수성구 만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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