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도의 오페라 이야기] ⑤브루노 프레베디

입력 2008-01-05 07:39:23

전설속의 테너 이야기(5) ― 브루노 프레베디(Bruno Prevedi·1928~1988) ―

프레베디는 북(北) 이탈리아 롬바르디주 만토바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몬테 베르디가 활약하던 곳이고 오페라 '리골렛토'의 무대가 된 지역으로 유명하다. 어머니로부터 음악적 재질을 물려받아 어릴 때부터 노래하길 좋아했다. 처음에는 만토바에서 음악교육을 받았으나 피아트 자동차 조립공으로 일하며 유명 테너 바지오리 선생에게 레슨을 받으면서 공부를 했으나 그의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벅찼다.

어느 날 카페의 카운터에서 그가 노래하는 것을 들은 스페인 부자가 후원을 해줘 계속 레슨을 받게 되어 1년간 열심히 공부를 했다. 1958년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토니오 역으로 데뷔했다. 그는 처음에 바리톤 인줄 알고 리골렛토, 루나 백작, 샤프레스 등 바리톤 역을 몸에 익혔다.

한번은 다시 '팔리아치'를 부르는데 오히려 테너역 카니오보다 더 아름답고 빛나는 음색을 보여 청중들을 놀라게 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테너로 전향하기로 결심한다. 그후 1년간 새로운 레퍼토리를 공부하여 마스카니의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뚜리두 역으로 데뷔한다.

1961년 이탈리아 여러 가극장에서 그의 명성이 나기 시작할 무렵 피아트 회사를 그만둔다. 1962년 볼로냐에서 세라핀 지휘로 벨리니의 '노르마'를 불러 델 모나코, 스테파노를 뛰어 넘는 새로운 테너로 기대를 모으게 된다. 이와 같이 바리톤에서 테너로 전향한 가수로는 프랑코 코렐리, 라몬 비나이, 카를로 베르곤찌, 플라시도 도밍고 등이 있다.

프레베디가 성공을 하게 된 시대적 배경을 보면 1960년대는 새로운 테너와 소프라노 출현을 갈망하고 있던 때였다. 1950년대는 정말 성악가들이 많이 배출된 황금시대였던 것이다. 소프라노계에선 마리아 칼라스와 레나타 테발디가 서로 대립하였고, 테너계에서는 델모나코가 군림하고 있었으며 시묘나토, 스키파, 타데이, 시에피등이 활약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들 1950년대 스타들이 노쇠해 신인의 등장을 고대하고 있던 그 무렵 겨우 몇 사람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중 제일 먼저 인기의 정점에 선 가수는 프랑코 코렐리, 카를로 베르곤찌, 코소토, 기아로프, 프레니 등이었는데 이때 베르디 '멕베스' 전곡 녹음을 가지고 나타난 혜성이 바로 드라마틱 테너 프레베디였다.

그는 프랑코 코렐리 이상으로 오페라계 제1선에서 활약한다. 프레베디의 음성은 코렐리의 빛나는 스핀토 테너와 베르곤찌의 지성적 미성이 혼합된 특성을 가져 순식간에 라스칼라, 로마 가극장, 나폴리의 산 카를로 가극장과 계약을 맺었고, 런던·파리·비엔나·부다페스트·스튜트가르트·맨하임·부에노스 아이레스·멕시코·뉴욕 등의 가극장을 순회하게 된다. 25개 이상의 오페라 레퍼토리를 가지게 되었고 '운명의 힘' '돈 카를로스' '시몬 보카그네라' '트로바토레' '투란도트' '토스카' 등이 대표적이다.

60년대 후반에는 '카르멘' '로엔그린' 등에 출연했으며, 바그너 음악을 좋아했으나 오텔로는 부르지 못했다. 독일어에 서툰 탓도 있었다. 그는 제임스 킹, 델 모나코, 맥크라켄, 코렐리 등과 함께 20세기 최후의 드라마틱 테너였다. 그는 1988년 1월 12일 밀라노에서 영면했다.

윤성도(시인·계명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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