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터널 지나 '동화나라'로…덕유산 눈꽃을 찾아서

입력 2008-01-02 07:32:15

무자년(戊子年) 새해가 밝았다. 동해에서 힘차게 떠오르는 일출도 새해맞이 이벤트로 좋지만 새하얀 산봉우리 위로 꿈틀거리며 솟구치는 해돋이 또한 새해 희망을 품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특히 아름다운 눈꽃이 활짝 핀 설경을 자랑하는 산봉우리에서 맞는 일출이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한 풍모를 갖춘 전북 무주의 덕유산. 안타깝게도 시간을 맞추지 못해 정상인 향적봉에서 해돋이는 보지 못했지만 순백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눈꽃의 향연을 통해 설국(雪國)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었다.

눈꽃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2, 3시간 정도 산을 오르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자연은 사람이 땀을 흘린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펼쳐보이는 법이다. 하지만 덕유산의 눈꽃은 산행의 발품을 덜어준다. 무주군 설천면 무주리조트에서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1,614m) 바로 옆 설천봉(1,520m)까지 스키어들을 위한 곤돌라가 운행되고 있어 정상까지 쉽게 오를 수 있다.

무주리조트 스키장을 찾은 날, 평일인데도 슬로프에는 스키어들과 보더들로 붐빈다. 울긋불긋 원색의 옷을 입은 이들은 하얀 슬로프를 누비며 짜릿한 쾌감을 맛보고 있다.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맞으면서도 활강이 안겨주는 쾌감에 모두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핀다.

운행시간이 20분 정도 되는 설천봉으로 가는 곤돌라에 몸을 싣는다. 얼마 가지 않아 곤돌라 양쪽으로 하얀 눈으로 옷을 갈아입은 나무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곤돌라를 같이 탄 사람들의 입에서 "야!" "멋지다!"는 탄성이 터져나온다. 곤돌라를 타고 수십m 위에서 바라보는 눈을 맞은 나무들의 모습은 흡사 동화의 나라에 온 것 같다. 환상 그 자체다.

곤돌라에서 내리자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아래쪽은 그래도 포근한(?) 날씨였지만 설천봉에는 동장군이 한껏 위세를 떨치고 있다. 곤돌라 종점에서 정상인 향적봉까지는 넉넉하게 잡아도 걸어서 20분이면 충분하다.

곤돌라 종점에는 한옥식 팔각정 휴게소가 있다. 상제루라는 이름의 이 휴게소 왼쪽 100m 지점의 리프트 종점 뒤로 가면 향적봉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 입구가 나타난다.

곤돌라에서 본 눈꽃은 '맛뵈기'에 불과했다. 향적봉으로 가는 길에는 눈꽃의 화려한 향연이 펼쳐진다. 천년을 산다는 주목을 비롯해 구상나무 등 나무마다 눈꽃이 피었다. 산죽(山竹)이나 이름 없는 풀에 핀 눈꽃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눈꽃 사이로 멀리 보이는 흰 봉우리들과 그 능선 사이로 넘나드는 구름, 바람이 한폭의 절경을 빚어낸다. 천상의 세계를 찾은 것처럼 눈꽃이 핀 터널을 걸으니 마음마저 깨끗하게 정화되는 듯하다.

주목이 드문드문 선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가는 하얀 길이 계속 이어진다. 그 길 양 옆으로, 그리고 머리 위로 눈꽃들이 피어 사람들을 맞는다. 차가운 공기를 맡으며 산책하듯 쉽게 오를 수 있다. 눈이 쌓여 길은 조금 미끄럽지만 계단이 있어 오르는 데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설악산, 한라산, 지리산, 태백산, 소백산 등 이름난 명산과 어깨를 견줘 덕유산의 눈꽃은 손색이 없는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눈꽃의 자태에 취해 산길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향적봉 정상이다. 20여 분 만에 오른 정상에는 한 길이 넘는 돌탑이 세 개 서서 정상임을 알리고 있다. 돌탑 옆의 두툼한 암부 꼭대기가 바로 덕유산의 최정점이다. 향적봉에서의 조망은 가야산 등 산릉이 중첩해 늘어선 동쪽이 일품이다. 산정에서의 조망 가운데 향적봉 정상의 것을 남한 최고로 꼽는 이들이 많다. 서쪽은 동쪽과 같은 기묘한 파랑이 연이어지는 듯한 산릉의 조화는 없는 대신 거칠 것 없이 툭 트인 광대한 공간미가 자랑거리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바람에 한치 앞도 볼 수가 없어 주변 산을 조망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한 해의 아쉬움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해 희망을 찾아 오른 덕유산 향적봉. 매서운 겨울 바람 속에서 화려하게 핀 눈꽃을 보며 흰 눈처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법하다.

글·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산행은=12월 중순 이후부터 향적봉은 눈에 덮여 있고 눈보라가 몰아칠 수도 있다. 나쁜 날씨에 대비, 복장을 단단히 갖추어야 한다. 곤돌라 운행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이며 운행요금은 왕복 기준으로 어른 1만 1천 원, 어린이 8천 원. 겨울 경우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강풍 때문에 운행을 중단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사전에 확인하고 가야 한다.(무주리조트 063-322-9000)

향적봉에서 일출을 보려면 정상 부근에 있는 대피소에서 1박하며 향적봉 낙조와 더불어 일출까지 보고 다음 날 하산하면 된다. 내려올 때 곤돌라를 타지 않고 향적봉 정상에서 백련사~구천동계곡~삼공리 시설지구로 걸어서 하산하는 경우도 있다. 3시간쯤 잡으면 된다.

▶대피소 이용방법은=겨울이면 주말엔 향적봉 대피소는 만원인 경우가 많으므로 예약하는 것이 좋다. 예약은 전화로 받는다.(전화 063-322-1614) 정원이 40명인 소규모 대피소이므로 예약을 서두르는 것이 좋다. 1박 7천 원. 대여료 침낭 2천 원, 담요 1천 원.

▶가는 길=대구에서는 김천을 거쳐 전북 무주로 가는 길이 가장 편하다. 성주에서 30번 국도를 타고 김천 대덕면 소재지~덕산재~나제통문을 거쳐 설천면 무주리조트에 닿을 수 있다. 아니면 김천까지 고속국도를 타고 가 3번 국도를 거쳐 대덕면에서 3번 국도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2시간가량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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