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사형제

입력 2007-12-31 10:36:39

용서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그것도 자신 또는 가족, 사랑하는 이에게 극악무도한 짓을 한 자를. 하늘에 사무치도록 恨(한)이 맺히게 만든 사람을 일러 흔히들 徹天之怨讐(철천지원수)라고 말한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대상. 그러나 세상에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사람들이 있다.

손양원(1902~1950) 목사. 일제 강점기 때 여수 애양원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았던 그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애국지사다. 한국 전쟁 당시 모두가 피란을 떠나는 가운데서도 환자를 돌보다 공산군에 체포돼 총살당했다. 그는 생전에 인간의 한계를 넘는 사랑의 실천자이기도 했다. 여순반란사건 때 반란군에게 두 아들을 잃었지만 아들을 죽인 사형수를 위해 탄원서를 올려 무기수로 감형받게 했고 마침내 양자로 입적시켰다. 사람들은 이런 그를 '사랑의 원자탄'으로 불렀다.

지난 2003년, 연쇄 살인마 유영철에게 가족 세 명을 잃었던 고정원 할아버지. 슬픔과 분노로 죽고 싶을만큼 괴로웠지만 오랜 번민 끝에 범인을 용서하기로 결심했다. 범인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나아가 사형 폐지 운동에도 동참하고 있다. 이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두 딸은 크게 반발하고 있지만 할아버지는 원한과 보복 대신 용서를 선택했다.

30일은 지난 1997년 12월 30일 23명의 사형수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뒤 우리나라에서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딱 10년째 되는 날이었다. 한국은 국제앰네스티가 분류하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대열에 들게 됐다. 이날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사형 폐지 관련 시민운동단체들과 종교 관계자들, 고정원 씨, 인혁당 사건 유가족 등이 참가한 가운데 수감 중인 64명의 사형수를 상징하는 비둘기 64마리를 날려보내는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그러나 사형제 폐지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다. 완전 폐지 주장과 유지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국회에서는 사형제 폐지 특별법안에 과반수 의원이 서명했지만 법사위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법무부도 "원점에서 연구, 검토 중"이라는 입장만 밝히고 있다. 세계 195개국 중 133개국이 폐지 또는 집행을 하지 않고 있는 반면 미국과 중국 등 66개국은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새해 초부터 사형제 폐지가 뜨거운 이슈가 될 참이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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