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4월 총선을 전후로 한 정국의 기상도가 이명박 대통령 정부 5년의 정국향방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여·야 혹은 보수·개혁 세력을 망라, 정계개편 소용돌이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당선자의 실용주의 노선이 동인(動因)으로 작용할 경우, 보수·개혁 혹은 여·야의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으며 지역주의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대표·강재섭 대표·정몽준 의원·이재오 의원 등과 범여권의 정동영 후보와 손학규 전 경기지사· 친노(親盧·친 노무현 대통령) 측 이해찬 전 총리 등의 입지는 어떻게 될까?
4월 이전에 정계개편이 이뤄진다면 이에 따른 각 정당이나 계파별 득실은 총선을 통해 드러날 것이며 그 결과에 따라 제2의 정계개편이 촉발될 수 있다.
한나라당이 총선을 통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여대야소(與大野小) 구도로 역전시킬 수 있을 것인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집권 프리미엄과 여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견제심리 중 어느 쪽이 우세할지를 가늠하기에는 아직 정국의 유동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계개편=정치권이 불안하다. 이번 대선이 극심한 후보 난립 속에 치러졌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다수의 후보가 출마했으며, 후보단일화가 막판까지 시도됐음에도 모두 무위에 그쳤다.
대선이 끝나자 불안감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정권교체나 정권재창출 등을 명분으로 봉합돼 왔던 정파별 갈등이 재연되기 시작한 것. 정계개편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야권은 물론 한나라당도 정계개편 불씨를 떠안고 있기는 마찬가지.
일차적으로는 '탈(脫)여의도 정치'를 표방하고 있는 이명박 당선자의 대대적인 인적쇄신 의지와 맞물려 있을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후보공천 과정에서 물갈이가 어느 정도 이뤄질지, 그리고 어떤 양상을 보일지가 변수로 꼽힌다. 대폭적인 물갈이가 단행된다면, 탈락 인사들의 거취에 따라 한나라당도 흔들릴 수 있다. 특히 친이(親李·친 이명박 당선자) 인사들이 득세하고 친박(親朴·친 박근혜 전 대표) 인사들이 대거 배제된다면 박 전 대표의 거취와 맞물려 한나라당의 내분 분위기가 고조될 것이다. 박 전 대표가 탈당, 지지 세력들과 함께 이회창 신당 쪽에 가세하게 될 경우 정치권의 보수진영이 양분됨으로써 한나라당은 총선에 비상이 걸리고 차기 국회는 여소야대(與小野大) 구도로 출범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야권 쪽에서는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 창조한국당, 이회창 신당 간에 세확산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고 이 과정에서 이합집산도 모색될 것이다.
신당과 민주당은 체제정비를 통해 경쟁력 있는 외부 인사들을 영입하는 등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단행할 움직임이다. 특히 대선에서 참패한 민주당은 총선에서 또다시 패할 경우 당이 공중분해될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 신당을 주적(主敵)으로 겨냥, 전통적인 텃밭인 호남권 회복에 당력을 총동원하겠다는 전략이다.
양당의 경우 총선에서 호남권을 어느 쪽에서 장악하게 되느냐에 따라 야권(野圈) 주도권의 향배가 갈리고, 정계개편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신당 내 친노 인사들의 경우 탈당, 독자적인 세력화를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
창조한국당은 다른 당과의 통합이나 연대보다는 독자적인 행보를 고수하고 있지만, 총선을 앞두고 비상이 걸려 있다. 원내 의석이 1석에 불과한 상황에서 총선에서 선전하지 못할 경우 당의 존립 자체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1월 중 창당을 목표로 한 이회창 신당 역시 활로 모색이 만만찮은 상황에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총선 출마를 통한 바람몰이론이 제기되고 있으나 본인은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 내부적으로는 외부 영입 등을 통해 총선 출마 예상인사들을 압축하고 있으나 여의치 못할 경우 군소정당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여야 모두 대대적인 인적쇄신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경우 후보공천 과정에서 탈락한 인사들의 거취가 정계개편을 더욱 가속화할 수도 있다.
◆여대야소=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압승한 데다, 총선도 차기 정부 출범 직후 치러짐으로써 집권 프리미엄이 작용할 수 있는 만큼 현재의 야대 구도가 여대구도로 바뀔 가능성이 일단 높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독자 개헌도 가능한 200석을 돌파할 것이란 자신감까지 들리고 있다.
그러나 집권당의 독주 체제를 경계하는 유권자들의 견제심리가 작용할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1987년 직선 대통령제 부활 이후 치러진 역대 총선에서도 대부분 견제 심리가 강했다.
다만 이번 총선은 집권과 동시에 치러진다는 측면에서 대선 표심에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한계가 있고, 신정부에 대한 기대심리도 높을 수 있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의 총선 공천 갈등이 어느 정도 표출될지 여부가 여대야소 구도 현실화의 변수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친박 의원들이 공천과정에서 소외되고 이를 통해 박 전 대표가 당내 위상에 위기감을 느끼게 될 경우 탈당이란 강수를 둘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한나라당은 대구·경북 등 텃밭인 영남권에 비상이 걸릴 수 있다. 특히 박 전 대표가 이회창 전 총재가 창당할 신당에 합세하게 된다면, 영남권을 둘러싸고 한나라당과 이회창 신당 간에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도 있다. 게다가 신당의 텃밭격인 충청권에서는 한나라당이 수세에 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회창 신당 외의 야당들이 대선충격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선전할 수 있을지 여부도 주목된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창조한국당 등이 대선에서처럼 지리멸렬하게 된다면 한나라당으로서는 판세를 더욱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다. 이와 관련,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총선 전 통합 혹은 연대를 성사시킬 수 있을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으나 대선 과정에서 빚어졌던 양당 간 혹은 계파별 갈등을 감안한다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주의=지난 대선을 통해 지역주의가 어느 정도 완화됐다는 분석이 다수다. 한나라당 이명박 당선자와 신당 정동영 후보가 각각 텃밭인 영남과 호남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과거 대선에 비해선 그 정도가 약했기 때문이다.
이 당선자의 경우 영남권에서 62% 정도를 얻었으나 2002년 대선 때 같은 당 이회창 전 총재의 70% 선보다는 낮았다.
정 후보도 광주과 전남·전북에서 각각 80% 안팎을 기록했으나 과거 대선 때는 호남권 후보 지지율이 90%를 넘었다. 게다가 이회창 전 총재도 연고지인 충청권에서 이명박 당선자에게 상당히 뒤졌다.
물론 17대 대선이 2002년 대선처럼 양자 대결이 아니라 3파전 양상으로 전개됨으로써 텃밭지역에서 표분산이 이뤄진 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지역주의가 완화되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수도권에서는 호남출신 유권자들의 결집이 이전에 비해 약했을 것이란 분석도 있으나, 이 지역에서 또 다른 지역주의적 몰표 행태가 새롭게 조성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정 후보가 수도권에서 이처럼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97년 대선 이후 정치권에서 가시화됐던 영남권 포위전략이 정권교체를 통해 호남권 포위전략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란 시각도 있다.
때문에 지역주의가 완화됐는지 여부는 총선결과 등을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특히 한나라당이 호남지역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이나 민주당이 대구·경북지역에서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지 여부가 주목되나 그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정치권 다수의 전망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지난 대선결과 호남에서 10%에 육박하는 지지율로 선전했지만, 범여권 분열상황 때문이란 점 등을 감안할 경우 총선에서도 재연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대통합민주신당 역시 대구·경북에서 10%에도 못 미침으로써 과거 호남권 후보들이 얻은 지지율 중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결국 지역주의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정치권에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여·야 중진들의 입지=한나라당에서는 박 전 대표와 강 대표, 정몽준·이재오 의원 등 중진들 간에 당권 및 차기 대권을 겨냥한 세 확산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선 과정에서 후보들 못지 않은 주목을 받으며 이명박 당선자의 승리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 박 전 대표와 당선자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이 의원 간의 향후 경쟁양상에 따라 당내 갈등이 고조될 수 있으며 이와 맞물려 대선막판 영입된 정 의원의 거취도 주목된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민주당 이인제·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대선패배 책임론에 휩싸이면서 당분간 2선으로 후퇴, 암중모색할 것으로 보이며 총선 출마를 통해 정치적 재기에 나설 전망이다. 반면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경우 신당의 당 쇄신 과정에서 참여정부 및 열린우리당과의 차별화 차원에서 유력한 당 대표감으로 부상하고 있을 정도로 상승세를 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서봉대기자 jiny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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