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땐 빠져 죽자"…기적이운 '右向右 정신'
'竹生魚龍沙(죽생어룡사) 可活萬人地(가활만인지), 西器東天來(서기동천래) 回望無沙場(회망무사장)'-어룡사에 대나무가 나면 수만 명이 살 만한 땅이 된다. 서양문물이 동쪽으로 올 때 돌아보니 모래밭이 없어졌더라.
조선시대 유명한 풍수학자 이성지의 예언시(詩)다. '어룡사'는 현재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들어서 있는 자리의 옛날 이름으로, 사람들은 모래사장뿐이던 이 곳에 대나무가 날 일이 없어 시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고 있다가 1968년 포스코(옛 포항제철)가 창립되고 제철소 굴뚝이 대나무처럼 우뚝우뚝 들어서자 그제서야 이성지의 예언이 적중했다고 감탄했다.
1968년 신화(神話)는 그렇게 시작됐다. 박태준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모래 바람과 싸운 지 40년, 포스코는 150년의 역사를 가진 선진 제철사들을 잇따라 누르고 파이넥스 공법 같은 초일류 기술을 앞세워 연간 3천300만t의 쇳물을 생산하는 세계 최고 철강사로 자리잡았다.
'자원은 유한, 창조는 무한'이라는 정신을 바탕으로 신화창조의 발걸음을 늦추지 않고 있는 글로벌 리더 포스코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조명해본다.
#1. 1965년 6월 초순 청와대-신화의 태동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대한중석 박태준(현 포스코 명예회장) 사장을 청와대로 불렀다. 군사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던 경제개발 5개년계획 1차가 끝나가던 시점이었다. 대통령은 박 사장에게 말했다. "산업화 바람으로 철강수요가 폭증하고 있소. 철을 직접 생산하지 못하면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전환시킬 수가 없는 것 아니오? 종합제철소 건설이 시급해졌소."
이 말에 박 사장은 "그렇긴 합니다만, 막대한 건설비는 어디서 조달하겠습니까?"라며 걱정어린 얼굴로 대통령을 바라봤다. 그러나 대통령은 "자금마련보다 더 급한 일이 있소. 그 막중한(제철소 건설) 일을 책임지고 추진할 사람이 필요한데, 그걸 당신이 맡아주시오."
박 대통령은 철강을 자력으로 조달하지 못하면 자립경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만 건설비가 워낙 막대해 선뜻 추진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다 마침내 결심을 굳혔던 것이다. 제철소 건설은 대통령에게 가장 큰 꿈이자 큰 짐이었다. 그런 당시의 최대 현안을 박 대통령은 박태준 사장에게 맡겼다.
"정치는 내가 할 테니까 자넨 경제를 맡아!" 그 유명한 일화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68년 4월 1일 박태준 사장을 비롯한 39명으로 포항제철은 출발했다.
#2. 1970년 4월 1일 오후 3시 영일만 모래밭-실패는 죽음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학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 등 세 사람은 영일만 모래벌판에 임시로 만든 착공식장에 마련된 착공버튼 앞에 섰다. '하나, 둘, 셋' 구령에 맞춰 버튼이 눌러지고 마침내 제철소 건설이 시작됐다. 종자돈은 이른바 '대일청구권자금'이라는 이름으로 조달된 7천370만 달러와 일본상업은행 차관 5천만 달러를 합친 1억 2천370만 달러였다. 우리나라를 식민통치했던 일본에게 '애원반, 협박반'으로 가져온 피 맺힌 돈이었다.
박태준 사장은 착공식 현장에서 직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선조들의 핏값으로 짓는 제철소 건설이 실패하면 우리는 모두 우향우(右向右)해서 영일만에 투신해야 한다."
모든 일에 목숨을 건다는 포스코의 이 '우향우 정신'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포스코의 사풍과 전통의 근간이 되고 있다. 지난해 직원들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도 포스코 정신의 최고가치를 상징하는 것 가운데 1위가 '우향우 정신'이었다.
#3. 1973년 6월 9일 오전 7시 30분 포항제철소 1고로-역사창조
임원과 건설요원 모두가 가슴을 졸이며 쇳물이 빠져나와야 할 포항제철소 1고로 출선구(出銑口)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순간 출선구가 '뻥' 뚫리며 한여름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쇳물이 쏟아졌다. 박 사장을 비롯한 모든 임직원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착공에서 완공까지 2년 3개월을 계획했던 포항제철소 1기 사업은 말 그대로 사투(死鬪)였다. 모랫바람과의 싸움이었고, 부실(不實)과의 싸움이었으며 무엇보다 초기건설 주역들은 자신과의 싸움을 벌여야 했다. 10년 전쯤 언젠가, 박태준 회장은 "직원 모두가 달콤한 휴식, 가족에 대한 그리움, '이 정도쯤이야….' 하는 나태의 유혹 등과 싸워야 하는 처절한 자기와의 전쟁을 해야 했다."고 당시를 떠올리며 "우린 공장이나 제철소를 지은 것이 아니라 역사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4. 2007년 5월 30일 포항제철소 파이넥스 공장-중단없는 전진
종합제철소를 짓자며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사장이 무릎을 맞댄 지 42년, 포스코가 창립된 지 39년 2개월이 지난 이날 노무현 대통령과 이구택 포스코 회장, 그리고 수백 명의 국내외 인사들이 포항제철소에 모였다. 많은 국민들도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이날 포스코는 포항에서 파이넥스 공법 상용화를 선언했다.
파이넥스 공법은 환경오염물질을 최소화하는 이점이 있어 일본, 호주, 미국 등 선진국 업체들이 먼저 상용화하겠다며 앞다퉈 달려들었지만 모두 실패한 반면 포스코는 이설없이 한번에 세계를 향해 신기술을 내놓았다. 이후 세계 철강업계는 "신기술에 관한 한 포스코를 빼놓고는 말조차 꺼내기 어렵다."며 공식적으로 세계 최고를 공인하는 분위기다.
공장이 준공된 지 7개월째인 2007년 12월 27일, 현장에서 만난 배진찬(38) 파이넥스 2공장장은 "초기 시험가동단계를 지나 10월 8일부터 하루 4천300t의 쇳물을 뽑아내 연간 150만t 생산이라는 정상조업 목표치를 완전 달성했다."며 "우리 직원들은 정상조업 달성 순간을 완성이 아닌,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운전실 벽에 걸린 50여 개의 폐쇄회로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건설부터 정상조업 달성 순간까지 고락을 함께했던 파이넥스 공장 200여 명의 모든 멤버들도 "목표만큼 빨리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우려는 했지만 단 한번도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할 일은 무조건하고, 우리가 하면 무조건 된다."고 했다. 창업 초기부터 40년째 숙지지 않고 있는 이런 불굴의 정신이 오늘의 포스코를 만든 원동력이다.
#5. 2007년 12월 26일 광양제철소-첨단화되는 신화
포스코는 영일만의 신화를 광양만으로 이어가기 위해 1985년 광양1기를 착공해 1992년 종합준공했다. 제선-제강-압연공정을 직선화하는 최신예 제철소에서는 연간 2천 만t가량의 쇳물을 생산하고 있다. 광양제철소는 특히 세계 최고의 자동차강판 전문제철소라는 타이틀을 차지했다. 두께가 서로 다른 강판을 원하는 치수와 모양으로 용접·가공하는 TWB공장을 비롯해 액체의 압력을 이용해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하이드로포밍 공장, 고온 성형으로 고강도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핫프레스포밍공장 등은 후방산업인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효과까지 내고 있다.
지난해 포스코 39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공장장 탄생으로 화제가 됐던 오지은(40) 도금부 1도금 공장장은 "지금까지 포스코의 역사를 무에서 유를 창조한 신화라면 이제부터는 신화의 첨단화이고, 그 막중한 임무를 우리 후배들이 맡고 있는 것"이라며 "남들이 넘볼 수 없는 세계 최고가 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했다. 또 "'우향우'는 40년이 지난 지금 광양만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 40년 만에 얼마나 만들어냈나?
1973년 6월 9일 포항제철소 1고로에서 처음 쇳물을 생산한 이래 지금까지 포스코가 생산한 쇳물은 모두 얼마나 될까?
포스코는 최근 광양제철소 3고로 설비증설을 통해 포항과 광양 두 곳 제철소의 연간 조강생산량을 3천300만t으로 늘렸다. 이로써 생산량 기준 서열을 세계 4위에서 2위로 끌어올렸다.
포스코는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생산하고 이 쇳물로 선재(線材·굵은 철사), 후판(厚板), 열연(熱延), 냉연(冷延), 전기강판, 스테인리스, 외판 블룸(BLOOM) 등의 철강 중간재를 생산하는데 지난 34년간 뽑아낸 쇳물은 모두 5천 만t가량이다.
창립 이후 지금까지 뽑아낸 직경 5.5㎜부터 42㎜까지인 선재 길이를 모두 합치면 지구와 달 사이를 254차례 왕복할 수 있는 정도. 또 후판(두께 3㎜ 이상) 생산량은 63빌딩 2천900채를 지을 수 있는 양이고, 열연강판 누적생산 길이는 지구를 100바퀴 회전할 수 있는 분량이다. 냉연강판 생산량을 모두 합치면 승용차 5천500만 대를 만들 수 있다.
이밖에도 포스코는 의료·주방용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스테인리스와 건축외장재 등으로 활용하는 전기강판 등 최근에는 부가가치가 높은 고급강 생산량을 크게 늘리고 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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